거대한 불평등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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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명시하고 있는 말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를 모든 사람은 동등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정치적 권리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 불평등은 정치불평등을 낳을 뿐 아니라 더욱 심화시키며, 정치불평등은 다시 경제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실 위기가 발생할때마다 항상 그 고통을 짊어지는 주체는 서민이다. 노동자는 직장을 잃고, 주택소유자는 집을 잃고, 서민들은 퇴직금까지 날려버리고 자식들의 등록금조차 낼 수 없어 평생의 꿈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자영업자들이 무더기로 파산하지만 대기업들은 거뜬하게 살아 남는다.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도 일부 기업은 더욱 번성하고, 은행들은 서민의 등을 치고 기업의 비위를 맞추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거대한 불평등>은 이런 일의 원인에 대한 오랜 천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008년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을때 유엔은 그 원인분석을 스티글리츠에게 의뢰했으며, 그 결과물이 <스티글리츠 보고서>이다. 이후 그는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 하는 작업에 몰두하는데, <불평등의 대가>를 거쳐 이 책에 이르면서 진보 경제학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불평등>은 2007년 부터 최근까지 <<뉴욕타임즈>>, <<베니티 페어>> 등의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주제별로 모아 엮은 것으로, 그간의 저서들과는 달리 학문적 입장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경제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건전한 경제학에 가장 유해한 것은 분배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며, 파이의 분배는 정치의 문제이므로 경제학자는 그 문제에 신경쓸 필요 없다는 보수주의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의 논리도 소개하고 있다. 이는 1%가 1%를 위해 설계한 경제정책의 대부분이 그렇듯 ‘은행들에게 충분한 재원을 투입하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 경제이론이 바탕이 된다. 스티글리츠는 이에 반해 중간소득과 저소득층을 지원함으로써 경제전체가 혜택을 보게해야 한다는 분수효과를 주장한다. 아울러 Sub Prime 사태때도 미국은 주택소유자를 도와야한다고 했음에도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그러지 않았으며, 실은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였음을 밝히고 있다.

시장조작, 내부자 거래, 불공정한 독점관행, 비열한 신용카드 관행, 차별적이고 약탈적인 대출 등 은행들이 착취방식에 집중하면 불평등이 심화된다. 반면 은행들이 일자리 창출방식에 집중하면 실업이 줄어드는 동시에 임급이 올라가서 평등성이 강화된다. 도박에 뛰어드는 은행과 대기업, 이길 경우 수익을 챙겨 빠져나갈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그 뒷감당은 정부 몫으로 떠 넘긴다. <불평등의 대가>에서 지대추구를 통해 은행과 대기업이 어떻게 배를 불려 불평등을 조장하는지 설명했는데, 여기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불평등은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라기보다 20세기 민주주의가 낳은 문제이다. 수익은 개인이 차지하지만 손실은 사회에 떠 넘기는 짝퉁 자본주의와 1인 1표주의 보다 1달러 1표주의에 더 가까운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난치상태의 불평등을 불러온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투자, 부실한 거래 등을 통해 국가에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을 입히고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오히려 거액의 성과급을 챙기거나 여전히 고액연봉을 받으며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관료, 정치인 그리고 이들과 유착한 업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틈바구니에서 손실을 입고, 파산하고, 실직한 국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원외교, 방산비리, 4대강사업이 그랬고 L시티, 포스코, 송도신도시사업, 한미약품 주식공매도 사건 등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해 왔다.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과 기회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현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미 부의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금융소득 가운데 이자소득과 임대소득이 노동소득을 크게 앞지르면서 자조적 수저계급론이 회자되는 것도 이를 반영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의료시스템이 마비된 국가에서 건강상태를 반영한 팔마비율이 소득반영 팔마비율에 비해 훨씬 심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통계이다.
기회의 불평등은 경제 피라미드의 바닥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그곳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이동성의 봉쇄로 나타난다. 이는 자식세대의 경제적 이동성 축소와 기회 축소를 낳기 쉽다.

스티글리츠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을 불평등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하는 것으로 지적 재산권과 특허관련 법률들을 들고 있는데,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뜨리는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는 여전히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질병인데, 그 가장 큰 원인은 부자나라들에서는 이 병이 완전히 극복된 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정보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2001년 정보 비대칭성의 결과에 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진보성향의 학자이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에서 진보경제학자의 스탠스는 그 스팩트럼이 꽤 넓은 편이다. 1%와 99%를 대비시키는 스티글리츠와 0.1%의 독식경제를 비판하는 토마 피케티를 동일하게 놓을 수 없으며, 진보경제학자이지만 재벌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는 장하준류가 존재한다. 대학에서 배운 <맨큐의 경제학>으로 보수주의 경제학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원제는 The Great Divide로 <거대한 균열>이라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스티글리츠가 <<뉴욕 타임즈>>에 ‘거대한 균열‘을 주제로한 시리즈 기고를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아마 앞서 출간된 <불평등의 대가>를 염두에 두고 제목을 살짝 비튼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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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12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국판 번역 제목에 그런 의미가 있군요. 일리가 있으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