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 강풍으로 마비된 제주공항의 이야기는 마침 세미나 때문에 그곳에 갔다가 발이 묶여버린 지인을 통해 듣게됐다. 인간의 바닥을 드러내게 만든 그곳의 상황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보이지만, 그로인해 일어나는 재앙의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그랬고 스촨의 대지진이 그랬다. 공항 관리공단의 이기적이고무책임한 직원들과 결항된 항공회사 직원들의 이해하기 힘든 업무처리와 태만.. 염치와 도덕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이 나라에서 어찌 그들만 나무랄 수 있을까만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실종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사흘을 대기하던 지인이 갑자기 넉넉해진 시간에 읽으려던 책이 바로 그 <인간의 품격>이었다. 문자로 지나치게 도덕책 냄새가 난다는 식의 주제넘은 소감을 보냈다가, 나이 먹어서도 때로 경솔한 내 행동을 반성하며 곧바로 철회했다.도덕적 운운은 아주 작은 주관적 흠결이지만, 사실 이 책에는 훨씬 무거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흥미롭지만 저자의 생각이 농축된 어휘들과 경구와도 같은 문장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멈추게 한다. 문득문득 눈을 들어 상념에 빠져들게 만드는 글이야말로 정말이지 매력적이지 않은가.미 대통령에서 소설가와 직업군인 그리고 고대로마의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여덟명의 다양한 인물과 그들에 얽힌 또 다른 인물들과 일화들을 통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듬어 가는것이 이책의 큰 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 모두 치열한 삶을 살아낸 범상치 않은 인간들이지만, 어차피 세상엔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라는 부제로 미루어 저자의 의도는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어쨌든 지인은 밤비행기로 무사히 돌아왔고, 끔찍하고 막막했던 사흘간의 제주공항 결항사태를 전해 들으며 새삼 <인간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