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언어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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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콜린스의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는 세계적인 유전학자가 유전체학의 성과와 기독교 신앙이 모순되지 않음을 논증한 책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수라는 과학적 성취를 바탕으로, 현대 과학과 기독교 신앙이 모순되지 않고 조화로울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무신론자였던 저자가 유전학을 연구하며 질서 정연한 우주의 법칙과 도덕율을 발견하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여정을 설명한다.


저자는 진화론과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결합한 '진화적 창조론' 이른바 바이오로고스(BioLogos)를 제안한다. 신이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인류를 창조했다는 관점인 것이다.


아울러 근본주의적 창조과학, 지적설계론, 그리고 과학주의적 극단적 무신론을 모두 비과학적이거나 독단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유전자 지도를 책 제목인 '신의 언어'로, 게놈을 '인류의 설계도'로 비유하며 복잡한 분자생물학 개념을 비전문가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저자는 무신론자나 타 주장의 관점을 무조건 공격하지 않고, 양측의 주장을 균형 있게 배치하며 이성적인 토론 분위기를 유지해 나간다. 


물론 이 책에는 대중성과 화해의 메시지라는 성과 뒤에 학술적·신학적 정교함의 부족이라는 약점도 존재한다. 


일례로, 인간의 '도덕율'을 신의 존재 증거로 삼는 C.S. 루이스 식의 논증을 차용하지만, 이는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적 관점(이타성의 진화)으로 반박당할 여지가 있다. 


또한 기적이나 부활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설명할 때는 과학적 방법론을 멈추고 신앙의 영역으로 후퇴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완고한 근본주의 신학자들에게는 '타협주의자'로, 리처드 도킨스 같은 강성 무신론 과학자들에게는 '기망적 인지부조화'라는 양방향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총평하면, '신의 언어'는 과학과 종교를 '진리 탐구'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 두 개의 창문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좋은 길잡이임에는 틀림없다. 철학적 엄밀함은 다소 아쉽지만, 현대 과학의 정점인 유전학자가 건네는 진솔한 화해의 손길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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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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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생인 저자는 유년기에 부모를 따라 식민지 조선에 살다가 평양에서 패전을 맞았다.

패전한 일본인 가족들은 천신만고 끝에 조선을 탈출하여 후쿠오카로 귀환했다.

그 와중에 모친은 사망하고 이후 가족들의 신산했던 삶을 통해 저자는 <타력>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슬픔이나 고통은 신앙에 눈뜸으로써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가 찾은 타력의 새로운 의미는 '내 소관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체념, 놓아버림, 맡겨버림을 통해 무한한 우주적 생명의 에너지로부터 긍정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뜻 같다.


결국 자력보다는 타력이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타력신앙에 매달려 안달복달 빌고 또 빌라는 말이 아니라,

묵묵히 주어지는 시련을 감내하면서 비워나가라는 말이다.


사바세계는 행/불행,  선과 악,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 사랑과 미움, 좋은 사람과 미운 사람이 반반씩 섞이기 마련이다.

우리들은 그러한 철저한 이원성으로 짜인 곳에서 호불호의 갈림길을 평생토록 겪어야 한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을 겪으면서 인연법과 인과법의 엄정함을 배우고, 카르마와 공업을 배운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세상을 겪어가며 근심하고 애달파하는 속에서 사랑과 자비의 소중함을 배운다.

더 이상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라! 

빌지 말고 부닥쳐라. 그리고 찬찬히 바라보라.

쓰라림과 고통에 도망 다니지 말고 당당해져라.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시련 속에 배움과 깨침이 있다. 

시련 속에서 모두가 함께 진화한다. 인과법 자체도 진화한다.


나의 바람과 거꾸로 가는 세상 속에서 더 크게 배우고 성장한다.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염원하는 건 좋으나 큰 기대는 하지 마라. 자칫 집착하면 윤회만 계속될 뿐이다.


상황과 환경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히 견뎌나가는 것. 

묵묵히 참아가며 좋은 쪽으로 회향해 마치는 것!

그것이 '타력'의 또다른 의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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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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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년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맞서 저자 나름의 논리로 우상을 타파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시대착오적이고 편향적인 진영논리에 기반하여 현실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 책에 대한 주요 비판점은 다음과 같다. 


1. 시대착오적 인식 (정보의 비대칭성과 시차)

* 마오쩌둥 주의에 대한 낙관: 이 책은 당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인간 개조를 통한 이상적 사회주의 모델'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실상은 극심한 인권 유린과 경제적 파탄이었으며,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독재 권력의 선전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시대착오적 오류로 지적된다.


* 실패한 체제에 대한 과대평가: 북한이나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대안인 것처럼 서술했으나, 냉전 종식 이후 이들 체제의 폐쇄성과 비효율성이 만천하에 증명되면서 논리적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비판도 받는다.


2. 편향적 정보 선택 (확증 편향)

* 비판의 비대칭성: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과 한국 정부의 독재는 날카롭게 비판하는 반면, 공산권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학살이나 독재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혁명의 진통'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는 객관적 사실(Fact)을 강조한 저자의 '우상 파괴' 철학이 정작 자기 진영의 우상에는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의 대상이다.


* 탈냉전적 시각의 부재: 당시의 냉전 구도를 '선과 악' 혹은 '제국주의 대 민중'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며, 국제 관계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단순하게 도식화한다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3. 진영논리의 고착화

* 교조적 도그마 형성: 이 책은 80년대 운동권의 '교과서' 역할을 하며 한국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했다. 상대방을 무조건적인 '기득권/악'으로 규정하는 진영 이분법을 제공하여, 합리적인 중도적 토론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맹목적 반미주의의 단초: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미국에 의한 종속'으로만 규정함으로써, 건국과 산업화 과정의 성과를 폄훼하고 무조건적인 반미 정서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82년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주모자들의 사상적 근거로 작용) 


4. 현대의 시각에서 본 시대착오성

냉전 시대의 산물인 '전환시대의 논리'는 21세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시점에서는 그 논리적 유효성이 다했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북한 및 중국의 현실이 증명하듯 당시 리영희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틀린 가설'이 되었다는 게 통설이다. 


요약하면, 이 책은 당시의 검열에 맞선 '진실의 목소리'였다기보다, 또 다른 형태의 이념적 확증편향을 양산한 '왼쪽으로 기울어진 우상'이라는 평가가 타당하다. 민족과 국가의 미래지향적 시대전환이 아닌, 안티-테제의 이론적 기초 작업을 위해 급조한 '부실한' 선동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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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 개정판
린 마굴리스.도리언 세이건 지음, 김영 옮김 / 리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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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구상에서 생명이 출현하여 인간이라는 고등생물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설명한다. 최초의 원시 수프에서 바이러스, 박테리아, 균류를 거쳐 단세포, 다세포, 식물, 동물에 이르는 각 과정을 저자 나름의 논리로 설명한다. 


지구상의 생명은 상호 의존적인 생물의 통합체(홀러키), 프랙털적인 네트워크이다. 


열린 시스템이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비평형 상태에 있다면, 에너지 유입을 통해 엔트로피가 감소될 수 있다. 엔트로피의 감소는 질서가 생김을 의미하고, 이 질서 속에 형성되는 특별한 구조를 소산구조(疏散構造)라고 한다. 생명의 창발에는 이 소산구조 개념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이 책 본문에서 생명의 정의에 관한 산뜻한 정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책 말미에 있는 장회익 교수의 마침글이었다. 


장교수가 결론적으로 정의하는 생명이란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 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 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 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존속률이 1을 넘어서는 연계적 국소 질서가 지속되어 나가는 체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교수가 제안한 '온생명'의 개념은 하나의 기구에 대해 그것의 물질적 연속성을 포기하는 대신 그것이 지닌 정보적 연속성을 취하는 책략, 즉 “생명의 개체화 책략”에 근거하여 유유히 연속되어 오고 있다. 오직 태양-지구계와 같은 항속적인 자유 에너지 원천을 그 안에 품고 있는 “온생명”과 같은 존재만이 한 생명으로서의 자족적인 존재 단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온생명"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자신을 파악하는 존재로까지 진화했다는 것은, 곧 자기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뜻한다. 결국 온생명은 35억년이란 성장 과정을 거쳐 비로소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 의식의 주체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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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정리 갈릴레오 총서 18
엘리 마오 지음, 전남식.이동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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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려진 모든 중요한 수식이나 방정식에는 제곱이 들어간다. 세제곱도 네제곱도 아니고 오직 제곱 뿐이다. 

제곱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루트' 즉 제곱근 정도인데 이것도 사실은 제곱의 역함수라 넓은 의미에선 제곱수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수학에서 식 x^2 + a^2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대부분 피타고라스 정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피타고라스 법칙의 역사적 유래로부터 현대 수학에 이르기까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명시적으로든 혹은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모든 방식을 소개한다. 


우주를 설명하는 법칙에 지수 2가 왜 이다지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도 쿨롱의 전기 법칙도 모두 역제곱의 법칙이다. 어쩌면 2가 파이π나 e조차 뛰어넘는 궁극적인 수학 상수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제곱의 법칙이 우리 우주 내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현실 공간이 3차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등방성이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며, 동시에 균질성이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시공간이 '편평하므로' 그러한 시공간 안에서는 제곱값이 좌표계에 영향 받지 않는 어떤 절대값이나 절대량을 의미하기 때문 아닐까도 싶다.


편평한 시공간 내에서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 혹은 연관성이란 (즉 수학이란) 그러한 좌표계와 무관하게 결정지어지는 일정한 값, 절대량, 절대값으로 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계산된 절대량이 우리의 4차원 시공간 내에서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는 점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너도 나도 모든 과학적 추론에는 제곱의 법칙부터 적용해보기 시작하면서 피타코라스의 정리는 모든 과학 이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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