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 명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에 대하여
박은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8월
평점 :
올해 책 읽기를 페미니스트와 슬픔에 대해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관심분야에 대한 이야기인데, 막상 말해놓고 보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각종 매체를 통하여 '페미니스트'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연일 쏟아져 나왔다. 서로 비난하고,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해졌다. 뭐랄까,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화장도 안 하고 여성스럽지 않으며 못생긴 뚱뚱한 여자라는 인식. 예쁘장한 여자가 저 '페미니스트예요.'라고 하면 '너같이 예쁜 애가 왜?'라는 반응들. 어디 가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말하기가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격하게 공감했다. 맞아, 나 역시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사실 불편한 게 많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글 쓰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해 본 적은 없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으냐를 떠나서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는 어쩐지 나를 위축시켰다. 나는 그렇게 자신을 지칭한 이후 내게 쏟아지는 시선이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이 옳다고 설득하여 그의 생각을 바꾸려 애쓰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대화는 아니었다."(5~6쪽)
페미니스트에 대해 알고 싶다가도 막상 그것이 무엇이냐 질문하면 딱히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나 역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나조차도 당연하게 생각한 부당함이나 불편함이 많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당연시 되어온 사실들,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부터 시작이란 걸 알면서도 제대로 보려 하지 못했다. 특히 나의 입장은 저자의 남편과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예전보다 이해를 맣이 해주잖아." 등. 그것은 이전과 비교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되어야 했었던 일들임에도 우린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득 명절 우리 집의 풍경이 생각났다. (세상의 잣대로) 나이가 꽉 찼음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앞으로도 할 마음이 없는) 나는 당연히 부모님댁으로 간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둔 남동생, 그의 아내는 나와 동갑이다. 우리 둘이 명절에 집에 가면 위치나 자세가 많이 틀리다. 나는 당연히 설거지도 음식 준비도 안 하는 '딸'이고, 가끔 도와주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딸'이다. 동생의 아내는 설거지도 음식 준비도 당연히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어설프거나 못하면 아직 일에 능숙하지 못한 '며느리'인 것이다. 중요하건 그 사실에 대해 누구 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당연히 자신의 집보다 먼저 우리 집에 와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당연히 우리 집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자기 집에서는 귀하게 자랐던 며느리들이 시댁에서 요리와 설거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서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데, 남자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좋은 남편, 자상한 남편이 된다. 그 가운데서 며느리는 '남편 잘 만나고' '시집 잘 온' 여자가 되는 것이 또 우스운 일이다. 집안일을 나눠 하는 것은 복덩이 남편을 만난 덕분에 얻은 혜택이 아니라, 공정하고 당연한 일인데.(49쪽)
몇 년 전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집은 종교적 성향이 불교인데, 당시 나는 교회를 다니고 싶었다. 기암 할 엄마를 알기에 애 둘러서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 만약 내가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가게 되면 어떻게 해? 반대할 거야?" 당시 우리 엄마의 대답은 "너야 어차피 시집가면 그 집식구가 될 사람이니까 괜찮은데, 네 동생은 며느리가 들어오는 거니까 절대 안 된다."라고 했다. 나의 반응은 오, 우리 엄마 의견 신박한데?였다. 나는 된다는 사실에 끄덕끄덕, 하나는 허락해주니 깨인 엄마인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차별 중에 차별이었다. 나는 시집을 가고, 며느리는 시집을 오고, 나도 며느리도 처음부터 누군가의 딸인데.
저자는 목덜미 잡는 시부모님께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며 싸워나간다. 이때 되려 걱정하고 질책하는 건 친정 부모님이다. 자식 교육 잘못시켰다고 비난받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별나다고 욕해도 다소 불편해도 서로가 껄끄러워진다 해도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비로소 평등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여성 혐오는 사적적인 느낌의 '증오하고 싫어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현상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여성의 한계를 긋거나, 성적 대상화하거나, 모성을 의무화하고 신성화하는 흔한 일들이 모두 여성 혐오이며, 김치녀라는 비하만큼이나 개념녀라는 칭찬 역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평가하고 대상화하는 행위다."(106쪽)
칭찬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조차 우리를 평가하고 대상화한다는 사실을 아는 여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좋은 건 그저 좋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런 불편한 시선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바꿔 나가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이라기 보다, 다 같이 평등한 세상을 위해 '명확히 설명 안되는 불편함에 대해' 알아가고 바꿔나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이야기가 불편한가, 그것이 불평등한 세상에 익숙해서 그런 것이다. 이젠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