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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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씹은 것 같은 불쾌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잘 썼기 때문에 불편한 기분이 든다. 이 소설집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로 언젠가 어디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첫 작품인 <작업실>의 주인공은 글을 쓰려고 하는 한 여성이다. 그 여성은 글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만의 작업실을 얻지만, 그 건물의 주인인 남성이 사사건건 귀찮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다. 결국 '자기만의 방'을 얻으려는 주인공의 노력은 큰 방해물을 만나게 된다. 그 남성의 무례함은 아주 익숙한 느낌을 준다. 누구나 이런 사람을 한 명 정도는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얼핏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을 넘나든다. 주인공이 느끼는 피곤함이 어떤 감정인지 독자인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현실적이다. 이 소설집에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아버지와 어떤 여성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그리는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와의 미묘한 거리감을 다룬 <나비의 나날>, 아픈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매의 이야기인 <위트레흐트 평화조약>등 꺼림칙하면서도 매력적인 소설들 투성이다. 어떤 이야기들이 꺼림칙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의 나날>의 주인공은 따돌림을 당하는 마이라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자신이 마이라의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마도 마이라가 내심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작중에서는 그런 주인공의 태도를 '배반'이라고 칭한다. 나는 주인공에게 배반당하는 마이라가 안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주인공의 마음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물론 유쾌한 이야기도 있다. <하룻강아지 치유법>의 주인공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진탕 술을 마신 뒤 대형 사고를 친다. 그 이야기를 읽을 때는 막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들이 떠올랐다.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앨리스 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삶에 대해서 썼다. 위에서 언급한 불쾌감, 불편함, 꺼림칙함과 같은 감정들은 이 책이 싫어서 느낀 감정들이 아니다. 때로는 모른 척 하고 싶고,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히 거기에 존재하는 삶들에 대해서 직시해야만 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지나쳐 온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우리의 이웃들이 겪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인물들이 어딘가 실제로 살아 있을 것만 같다. 인물들은 비겁하기도 하고 속물 같기도 하고 모순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현실의 사람들도 그렇다. 어떻게 이렇게 세심하게 누군가의 일상을, 어떤 사람들의 인생을 그려 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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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세스 에이징 - 노화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뇌과학의 힘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이은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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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람들은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는 젊음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있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과 활력을 동반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늙는다는 건 그 가능성들을 조금씩 잃어버리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인 양 치부된다. <석세스 에이징>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깨고, 나이들어 가는 몸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들을 알려 준다. 표지에 쓰여 있듯 이 책은 노화를 신경과학,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의 관점에서 집대성한 책이다. 아주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몰입하게 된다. 어려운 내용들 속에서도 재미있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꽤 많다. 예를 들어 1부의 초반부에서는 사람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책에 따르면 성격의 5대 요인은 외향성, 우호성,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 대 신경증, 경험에 대한 개방성 + 지적 능력이라고 한다. 성격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한 사람이 어떤 노년기를 보내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지적 능력이나 호기심이란 그 사람이 새로운 것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말한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거나 이전부터 하던 창조적인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정체되지 않고 활력 있게 살아가는 것은 장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개방적인 사람은 대체 의학이나 사이비 의학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내용들이 아주 흥미로웠다. 1부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뇌와 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기억이란 무엇인지, 지능이란 무엇이며 정말 나이가 들면 지적 능력이 퇴화하는지, 행복과 같은 개인적 정서와 사회적 요인이 노화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등 재미있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2부에서는 쉽게 말하자면 건강하게 늙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간단하게는 우리가 모두 다 알 만한 말들로 요약할 수도 있다. 생체 리듬, 식습관, 운동하는 습관과 수면이 노년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체 리듬에 관한 내용이 조금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사람마다 고유한 생체 리듬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고, 어떤 사람은 저녁형 인간이다. 그 리듬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우리의 신체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출근이나 등교, 다른 많은 일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가 추구하는 고유의 리듬을 찾아 생활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체 리듬을 찾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2부에 그 방법이 실려 있으니 실험 삼아 실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습관이나 수면, 운동과 관련된 많은 조언들은 언제나 내 한쪽 귀로 들어와서 반대쪽 귀로 빠져나가곤 한다. 그러나 운동과 관련된 내용에서는 아주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주기적으로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거나 트레이너와 운동하는 게 좋겠지만) 한 번씩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활기찬 노년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예시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수면과 관련한 내용들을 읽으면서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면증이나 수면 부족이 알츠하이머 발병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매일 하루에 9시간씩 잠을 자는 걸 건강의 비결로 꼽았다고 한다. 현대의 한국인들이 하루에 9시간씩 자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법이나 약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3부는 인간의 수명에 대해, 그리고 노화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정해진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의 수명이 무한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고 한다. 인간이 굳이 무한히 살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수명에 관련된 연구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인 건 확실하다. 책을 읽다 보면 늙음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을 깰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는다는 것과 같은 당연한 사실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늙어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늙어서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두께가 두껍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책이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다. 특히, 늙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아주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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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심용희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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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동물의 시계가 인간의 시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동물과 함께 사는 인간들은 보통 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의 이유가 병이나 사고가 아니라고 해서 슬프지 않을 리는 없다. 동물 기준에서는 천수를 누리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들 남겨진 사람은 이별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 펫로스 증후군이란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겪는 큰 상실감이나 우울감, 슬픔 등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펫로스 증후군의 심각성이 과소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그게 동물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비슷한 맥락의 정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반려동물에게 (보는 사람의 일방적인 기준에서)'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한 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존중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의 저자는 본인 또한 여러 동물을 반려하고 있는 수의사다. 이 책은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이, 나이 든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천천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지난 시간들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책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인가 동물과 함께였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나 친구에게서 입양한 어린 햄스터, 달팽이, 열대어에 대한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명을 전부 다 채우고 건강하게 살다 간 동물들도 있었고 병으로 일찍 죽은 동물들도 있었다. 함께 산 기간이 얼마나 되었든, 종의 특성상 신체적 접촉이 많았든 거의 없었든 모든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모든 이별은 마음 아팠다. 세 달을 함께 살았으면 덜 슬프고 십 년을 함께 살았으면 더 슬플까? 사람의 마음이란 건 그렇게 계량할 수가 없다. 정해진 수명 때문에 동물이 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더라도 마음이 납득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모든 동물 반려인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더 함께해 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리라는 죄책감,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서 오는 분노. 저자는 그런 감정들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각 감정들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그 감정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감정의 치유가 시작됩니다." 라는 문장에서도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나이 든 동물과 함께 살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 펫로스를 겪고 극복한 사람들의 실제 사례, 자신의 펫로스 증후군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자가진단 테스트와 같은 유용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동물을 잃은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도 몇 가지 소개되어 있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반려동물과 살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더 쉬운 편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거의 모든 이야기와 사례는 개나 고양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소동물이나 특수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은 모든 반려인들에게 위안이 되어 주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온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별의 순간이 지나갔다 하더라도 당신과 반려동물의 관계는 종료된 것이 아닙니다. 둘이 나눴던 시간과 감정을 통해 영원히 연결될 것입니다." 분명, 어떤 관계들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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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 더 이상 사랑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자아성장의 심리학
비벌리 엔젤 지음, 김희정 옮김 / 생각속의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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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기른 적이 있다.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좋다고 해서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꿨다. 남자친구의 취향에 맞춰 다른 립스틱을 쓰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모임을 줄였다. 게임 하는 여자는 별로라고 해서 게임이 취미라는 사실을 숨겼다. 이런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이기도,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장 얼마 전까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미움받는 게 겁이 나서, 상대방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자신을 싫어할까 봐, 뭐 그런 이유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만을 가장하는 건 그리 건강한 행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는 사랑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상태를 '자신을 잃어버렸다' 혹은 '자기를 상실했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지적이고 능력 있는 여자들도 사랑에 빠지면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자들은 왜 자신을 잃어버릴까? 거기에는 문화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 그리고 심리적 요인이 있다. 이 책의 1장에서는 그런 요인들에 대해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연인에게서 찾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며 사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그런 헌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연인을 만드는 걸 포기하는 것도 그렇게 행복한 길만은 아닌 것 같다. 여성들이 자신을 지키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2장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7가지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몇몇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눈에 반했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천천히 알아간 다음 연인 관계가 되기, 인위적으로 꾸민 모습보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기, 자신만의 일상생활과 루틴을 허물지 않기, 헛된 환상보다는 현실에 집중하기, 남자를 위해 자신을 바꾸지 않기, 서로 동등한 관계로 만나며 참지 않고 속마음을 표현하기. 물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라는 게 처음부터 자신의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거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하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이 게임 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취미가 게임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 고작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가는 남자라면, 떠나가게 두라는 뜻이기도 하다. 책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예시가 나온다. 남자친구에게 푹 빠져 하던 봉사활동을 그만두거나, 일을 줄이거나 운동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곤 했다.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은 상대 남성에게 휘둘리면서 잦은 정서적 폭력도 기꺼이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점점 더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2장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예시들 중 와 닿는 내용이 꽤 많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낮아진 자존감을 되돌릴 수 있을까. 3장에서는 자존감 있는 여성으로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스스로에 대해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특히 과거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많은 여성들은 제대로 된 애정을 주지 못한 부모나 혹은 학창시절에 따돌렸던 가해자들, 자신에게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던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오래 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부모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주지 못할 사람들이었음을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쁜 부모였던 자신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사람들이 되고,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리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되찾으려면 어떤 상처들이 현재의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 밖에도 자신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뭘 바라고 뭘 추구하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다른 사람에게 쏟는 애정만큼 스스로에게도 애정을 쏟는다면 점점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연애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꼭 연애를 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관계를 꿈꾸는 게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그 누구도 사랑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보이기 위해 꾸며낸 모습만을 받아들여 줄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건 그리 현명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리고, 설령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만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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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5
강제윤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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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모섬이 없다.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의 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신안은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 왕국이자 이야기의 제국이다." 나는 신안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원래는 신안 하면 딱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신안군은 모섬이 없이 개별적인 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여행자들은 '신안'이라는 이름보다는 홍도, 흑산도나 가거도처럼 섬 하나하나의 인상을 기억에 남기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신안 주민들조차도 신안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기는 어렵다고 한다. 신안은 1025개 혹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지역인 것이다.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에서는 25개의 장소를 소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신안이라는 지역에 대해 풍부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 한 권으로 신안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섬에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어떤 섬에서는 58세의 해녀가 가장 젊은 해녀다. 어떤 섬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어떤 섬 사람들은 물질로 생계를 해결한다. 과연 이야기의 제국이라는 말을 붙일 만한 지역이다.

신안을 찾는 여행자들이 아주 적지는 않다. 신안의 유명한 관광지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있는 안좌도, 최근 순례자들을 위한 길이 생기며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기점도와 소악도, 홍도 10경으로 대표되는 절경이 기다리고 있는 홍도 등이 있다.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 역시 신안의 섬이다. 입도와 숙식을 모두 예약제로 운영함으로써 섬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도 여행자들이 섬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영산도 역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염전과 돌담, 갯벌, 바닷가의 사막과 같은 산태 등 신안의 섬들은 볼거리로 가득차 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 된다. 번화한 관광지처럼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생활이 편리하지는 않지만, 섬을 찾아 떠나는 이들에게는 그런 한적함 역시 매력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신안의 임자도에서 튤립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도에는 흐드러지게 동백꽃이 피고, 수선화를 가꾸며 살아가는 한 할머니의 힘으로 선도는 꽃섬이 되었다. 많은 섬이 있다는 건 그 중에 자신의 마음을 채워 줄 섬이 한 군데는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섬은 육지와 단절된 공간이다. 게다가 신안과 같은 지역에서는 수많은 섬 각각이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는 섬 연구자이자 섬 활동가로서 섬의 환경과 섬 주민들의 기본권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다.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에서는 신안의 아름다운 경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업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민들의 이야기, 공영버스가 생기기 전에는 섬 사람들이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다룬다. 섬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으려면 섬과 섬 사람들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섬들의 이야기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롭게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 책에 남을 수 있어서,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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