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안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ㅣ 대한민국 도슨트 5
강제윤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신안군에는 모섬이 없다.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의 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신안은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 왕국이자 이야기의 제국이다." 나는 신안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원래는 신안 하면 딱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신안군은 모섬이 없이 개별적인 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여행자들은 '신안'이라는 이름보다는 홍도, 흑산도나 가거도처럼 섬 하나하나의 인상을 기억에 남기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신안 주민들조차도 신안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기는 어렵다고 한다. 신안은 1025개 혹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지역인 것이다.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에서는 25개의 장소를 소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신안이라는 지역에 대해 풍부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 한 권으로 신안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섬에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어떤 섬에서는 58세의 해녀가 가장 젊은 해녀다. 어떤 섬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어떤 섬 사람들은 물질로 생계를 해결한다. 과연 이야기의 제국이라는 말을 붙일 만한 지역이다.
신안을 찾는 여행자들이 아주 적지는 않다. 신안의 유명한 관광지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있는 안좌도, 최근 순례자들을 위한 길이 생기며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기점도와 소악도, 홍도 10경으로 대표되는 절경이 기다리고 있는 홍도 등이 있다.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 역시 신안의 섬이다. 입도와 숙식을 모두 예약제로 운영함으로써 섬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도 여행자들이 섬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영산도 역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염전과 돌담, 갯벌, 바닷가의 사막과 같은 산태 등 신안의 섬들은 볼거리로 가득차 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 된다. 번화한 관광지처럼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생활이 편리하지는 않지만, 섬을 찾아 떠나는 이들에게는 그런 한적함 역시 매력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신안의 임자도에서 튤립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도에는 흐드러지게 동백꽃이 피고, 수선화를 가꾸며 살아가는 한 할머니의 힘으로 선도는 꽃섬이 되었다. 많은 섬이 있다는 건 그 중에 자신의 마음을 채워 줄 섬이 한 군데는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섬은 육지와 단절된 공간이다. 게다가 신안과 같은 지역에서는 수많은 섬 각각이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는 섬 연구자이자 섬 활동가로서 섬의 환경과 섬 주민들의 기본권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다.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에서는 신안의 아름다운 경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업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민들의 이야기, 공영버스가 생기기 전에는 섬 사람들이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다룬다. 섬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으려면 섬과 섬 사람들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섬들의 이야기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롭게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 책에 남을 수 있어서,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