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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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사전서평단을 통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성장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원>은 회복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유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세상은 유원이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익명의 많은 사람들, 동네 할아버지, 반 친구들이며 부모님까지. 너무나 어린 시절에 큰 사건의 생존자가 되어 버린 유원의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라 한 명의 생존자로서의 삶이다. 공부를 잘 하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는 유원은 점심 시간이면 혼자만의 아지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유원은 그 아지트에서 학교 옥상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는 '수현'을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학교 옥상에 들어가 본다. 수현을 만나면서 유원의 세계는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와 놀기 위해 학원 수업을 빠지고,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그러나 어느 날 수현은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릴 만한 큰 이야기를 유원에게 털어놓는다.

<유원>에서 유원이 어릴 적에 겪은 사건이 무엇인지, 그 사건은 지금의 유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일부러 자세히 쓰지 않았다. 그 사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서평을 쓰는 게 어렵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미리 아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불안감과 안도감, 혼란스러움과 따뜻함, 그 밖의 다른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가제본의 뒷표지를 보면 '모순투성이 마음을 딛고 날아오르는 모든 이를 위한 성장소설'이라는 문장이 있다. 그 말처럼 유원의 마음은 늘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누군가가 고마우면서도 괜히 미울 때가 있다. 좋으면서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유원이 누군가에게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자신의 삶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마스터키를 가진 수현은 유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솔직하고, 정의롭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현이라는 인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려면, 그들 자신이 부단히 노력하거나 누군가가 밖에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어야만 한다. 수현은 유원의 마음을 열어 주는 존재일 뿐 아니라 유원이 높은 곳에 오르도록 도와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음을 걸어잠근,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현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원의 비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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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네마 던전 : 김봉석 영화리뷰 SF 편 A♭시리즈 15
김봉석 지음 / 에이플랫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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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 던전>은 저자 김봉석이 쓴 영화 리뷰들을 장르별로 묶은 시리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명작과 '망작'을 가리지 않고 묶었다고 한다. 최근 SF라는 장르의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SF 편을 읽어 보았다. SF 편에는 총 58편의 영화 리뷰가 실려 있다. 그 중에는 <인터스텔라>나 <마션>, <그래비티>, <그녀>처럼 내가 본 영화들도 있고, <에이리언 4>나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트랜스포머>처럼 내가 보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유명해서 들어 본 적이 있는 영화들도 있고, 아예 이름을 처음 보는 영화들도 많았다. 나는 SF 영화를 몇 편 보지 않았지만 SF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입문자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저자의 리뷰들을 읽으며 큰 도움을 받았다.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리뷰들도 있었고, 이 영화는 소위 말하는 '망작'이기 때문에 굳이 당장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리뷰들도 있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어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리뷰 몇 편, 그리고 저자의 리뷰를 읽고 나서 보게 된 영화 몇 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1.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너리티 리포트> 

 만약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지할 수 있다면, 예비 범죄자를 범죄자로 간주해야 할까?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을 배경으로 한다. 2054년의 워싱턴 D.C.에는 예언자들의 능력으로 범죄를 예지하여 예비 범죄자를 처벌하는 '프리크라임'이라는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즉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다름없이 취급하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예언이란 거의 운명과도 같다.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 운명을 뒤집을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저자의 리뷰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은 과연 배치되는 것일까. 예언이 100퍼센트 정확하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고,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면 예언으로 인간을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라는 문장을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프리크라임이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누군가는 검은 음모를 꾸미고, 주인공은 거기에 맞서게 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유명한 영화지만 나는 운 좋게도 2020년까지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영화를 처음 볼 사람을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남기지 않는다. 가급적 스토리를 누설하고 싶지 않아서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겠지만, 몇몇 장면들은 영화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나 잘 찍었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2. 워쇼스키 자매, <브이 포 벤데타>

 <브이 포 벤데타>의 배경은 세계 3차 대전이 끝난 이후의 영국으로, 아담 서틀러라는 총통과 노스파이어 정당이 집권하는 독재 국가다. 모든 시민들의 일상과 생활이 국가에 의해 통제당하는 상황에서 테러리스트인 주인공 '브이'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디스토피아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브이라는 개성 강한 주인공의 흡입력도 괜찮았다. 브이는 저자에 따르면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폭력과 죽음을 택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브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브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SNS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가이 포크스 가면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유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인 브이는 작중에서 내내 쓰고 있는 가면이다. 

 

 3.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저자가 이 책에 리뷰를 싣은 영화는 내가 본 솔라리스(1972년작)가 아니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2002년작)였다. 두 영화가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둔한 편이었기 때문에 보면서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주인공인 크리스는 솔라리스라는 행성으로부터 한 테이프를 받고 우주 정거장으로 떠난다. 우주 정거장에는 원래 세 명의 과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이미 자살했고, 나머지 두 명 역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솔라리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하는 주인공의 앞에 오래 전 자살한 주인공의 아내가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솔라리스(1972년작)는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고 느꼈다. 기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불친절한 영화라는 평이 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저자가 리뷰를 쓴 2002년작도 기회를 만들어서 볼 생각이다. 

 

 위에 언급한 몇 편의 영화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흥미를 갖게 되어 일부러 찾아서 본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외에 내가 리스트로 작성해 둔 영화들은 다른 이의 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의 <더 셀>, 가상 현실과 디지털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몬>, 외계인과의 만남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매력적으로 다룬 <콘택트> 등이 있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매력적인 영화들이 잔뜩 묻혀 있으니 천천히 읽어 보며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를 찾아보는 사람이 있고, 아무런 사전 정보도 접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리뷰를 보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가 잘 만든 영화인지, 아니면 굳이 시간을 내어 볼 필요가 없는 영화인지 미리 알고 싶은 나쁜 마음도 있다. 저자의 SF 영화 리뷰들을 재미있게 읽었고 덕분에 몇 편의 영화를 새로 보게 되었다. 제목이 <시네마 던전 : 김봉석 영화리뷰 SF 편>이니 당연히 다른 장르에 대한 리뷰들을 모아 놓은 책도 출간된다. 어떤 장르에 막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되어 줄 책인 셈이다. 사람마다 SF라는 장르 안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소재나 키워드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큰 분류에 따라 대략적으로 영화들을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찾기가 더 쉽다. 나보다 많은 영화를 본 사람의 글을 미리 읽고 내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골라서 본다는 게 조금 얌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안내서를 썼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SF 영화의 매력에 빠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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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 -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안방에서 즐기는 세계 여행 스토리
김영연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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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를 좋아한다. 혼자 여행할 때면 일정 중 하루 정도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곤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분위기 자체가 좋다. 저자는 서울에서 한옥 게스트하우스인 '유진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유진은 저자의 딸 이름이라고 한다. 오래 된 한옥을 수리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인 데다, 김치 담그기 체험이나 캘리그라피 체험 등 이런저런 행사를 하고 있어 세계 각지에서 한국 문화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진하우스는 2009년 12월에 한옥체험업소로 등록했다. 한옥체험업의 선구자격인 셈으로, 10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추억들을 담아 온 집인 것이다.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있었던 일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저자가 깨닫고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가까운 일본에서 오는 손님들부터 저자가 이름조차 몰랐던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유진하우스를 다녀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는 자기 집에서 세계 여행을 하는 셈이다.

손님들의 일화를 읽어 보면 다양하기도 하다. 한국의 건물들을 살펴보고 싶어하는 체코의 건축학도, 한국에서 입양한 자녀들의 친부모를 찾아 주기 위해 방문한 노르웨이의 한 부부, 한일역사 바로 잡기를 목표로 삼은 일본인 교사들, 한국에서 열리는 게임 축제에 방문하기 위해 유진하우스를 찾아온 폴란드 출신의 게임 개발자까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폴란드 게임 개발자가 만들었다는 게임을 실제로 찾아 보기도 했다(안타깝게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사연과 추억들을 품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왜 저자가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을 한다는 제목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유진하우스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진하우스를 방문하는 손님들 중에서는 손으로 쓴 엽서로 예약을 하는 손님도 있다. 숙박업소 플랫폼이나 앱, 해당 숙박업소의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5분이면 예약이 가능한 세상이다. 매번 손수 쓴 엽서를 보낸다는 점이 조금 멋지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엽서가 손님보다 먼저 도착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요즘에는 엽서를 보내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나도 여행지에서 친구들에게 편지나 엽서를 보내곤 했는데, 확실히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엽서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정서도 있다. 저자는 유진하우스에서 만난 손님들과 친구가 되어 계속해서 안부를 주고받는다. 멀리서 도착한 엽서가 얼마나 따뜻하고 반갑게 느껴질까. 친한 사람들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고 싶어지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눈에 관한 대목이었다. 유진하우스에서는 눈이 내리면 눈이 녹아 버리지 않게 놓아 두려고 노력한다. 한 번도 눈을 본 적이 없는 손님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과연, 계절이 뚜렷해 겨울이면 어렵지 않게 눈을 볼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눈이 아예 내리지 않는 나라들도 많다. 그런 나라에서 온 손님들은 눈을 직접 보거나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해한다고 한다. 그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까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의 배려심을 갖춘 사람이어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래 된 한옥에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맞는 사람이 쓴 책이 재미가 없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는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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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근 샘의 글쓰기 수업
이영근 지음 / 에듀니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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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걸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작가가 될 필요도 없고, 모두가 글을 잘 쓸 필요도 없다. 일기를 쓰며 오늘 있었던 일을 돌아본다거나, 읽은 책에 대해 간단하게 기록한다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일들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만족감과 성취감을 가져다 준다.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모인 기록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들이 글쓰기라는 행동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일단 습관이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근 샘의 글쓰기 수업>은 실제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학생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방법들이 담긴 책이다.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글로 옮기는 습관이 든 학생들은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일기 쓰기에 대한 발췌문은 여기에 공유하고 싶다. 이하는 윤태규,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에서 저자가 발췌한, '일기 쓰기가 실패하는 이유'들이다.

 1. 특별한 일을 쓰라고 하기 때문에

 2. 글쓰기나 국어 공부를 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3. 길게 쓰라고 하기 때문에

 4. 잠자기 바로 전에 쓰기 때문에

 5. 반성하는 일기를 쓰라고 하기 때문에

 6. 사실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쓰라고 하기 때문에

 7. 일기장에 있는 잡다한 틀 때문에

 8. 일기 검사 때문에

 9. 숙제로 쓰기 때문에

 10. 대신 써 주기 때문에

 11. 그림일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12. 어른들이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성인들이 글 쓰기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바로 일기 쓰기다. 나 같은 경우에도 일기를 매일 써서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방학 숙제로도 일기를 써야 했는데, 방학 내내 놀면서 일기 쓰기를 미루다 보면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에 밀린 일기장이 나를 기다렸다. 내용은 지어 내거나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려 쓴다고 해도 날씨 칸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나는 글 쓰는 걸 싫어하지는 않지만 당시에 일기를 쓰는 건 꽤 괴로운 기억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일기 쓰기에 대한 내용이 가장 궁금했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일기 쓰기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우선 저자는 일기 쓰기 교육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꺼내 놓으며 시작한다. 일기 쓰기 교육은 필요하지만,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교육자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경우 일기를 검사하면서 학생들이 보여 주기 싫어서 접어 두거나 별 표를 친 부분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확실히 선생님이 일기를 읽어 본다는 생각을 하면 쓸 수 없는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내용들은 접어 놓으면 선생님이 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도 저자의 능력이다. 또, 일기에서 맞춤법이나 틀린 단어를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는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들이 틀린 말을 쓰고 지적받는 걸 두려워하게 되면 일기 쓰기를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는 저자의 반에서 매일 아침에 하는 '글똥누기'를 비롯해 일기, 서사문, 설명문, 보고서, 독서감상문, 논설문 등 다양한 글 쓰기를 가르치는 법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다. 학생들과 발표 수업을 진행할 때 유의할 점, 독서 토론을 하는 법 등 교사들에게 피와 살이 될 만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런 선생님께 글 쓰기를 배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에게 글 쓰기를 가르치고 싶은 사람, 어린이들과 함께 편안하게 글을 써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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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도시 Part 1 : 일광욕의 날
김동식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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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도시 - PART 1 : 일광욕의 날>(이하 월면도시)는 센트럴이 지배하는 월면도시를 배경으로 한 단편 시리즈다. 총 여섯의 단편들은 각각의 작가가 다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 모든 사건들이 (크게 보면)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세계를 엿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의 설정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중요한 사실을 숨기며 사람들을 조종하려 드는 거대한 권력(센트럴)의 존재와 그 센트럴에 맞서는 사람들. 다른 분위기를 가진 열두 개의 월면도시들, 동물들과 같은 특징을 가진 수인들과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같은 존재인 문차일드. 매력적인 배경 설정들이 독자가 소설에 더 잘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동식 작가의 단편 <재현>의 주인공은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려는 한 경관이다. 정명섭 작가의 단편 <진시황의 바다> 속 주인공 일행은 불로초를 찾아 폐쇄된 갱도 안으로 떠난다. 김선민 작가의 단편 <제 13호>의 주인공 판유는 알려지지 않았던 열세 번째 열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센트럴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직감한다. 홍지운 작가의 <하드보일드와 블루베리타르트>는 수인들의 존재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드러내는 단편인데, 뱀 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창규 작가의 단편인 <가마솥>의 주인공 교진은 외계인에 대해 조사하려고 한다. 최지혜 작가의 <예약 손님>에 등장하는 세 남매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려다가 외계인을 마주친다. 그 중 셋째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상이 내용을 지나치게 많이 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각의 단편들을 간략하게 설명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이 벌어진 세계는 '일광욕의 날' 이후로 크게 변했다. 일광욕의 날에 대한 설명 역시 책을 직접 읽으며 알아보고 추측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여기에는 쓰지 않는다. 읽다 보면 월면도시의 설정이 아주 속속들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책이 'Part 1'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필로그인 <너울>을 읽어 보면,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월면도시>의 좋은 점은 독자가 책 속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쓰였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월면도시, 트레인, 센트럴, 문차일드, 올드타운 등 많은 설정이 등장한다. 이 책은 (부록의 월면도시 연대기를 제외하고) 그런 설정들을 매번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작가가 설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소설은 대부분 재미가 없다'와 같은 논조의 주장을 읽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탄탄한 설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설정들이 재미있는 방식으로 소설 속에 녹아 있지 않다면 읽으면서 위화감이나 따분함을 느끼게 된다. <월면도시>의 등장 인물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매력적이다.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월면도시의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월면도시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서 기쁘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소설들이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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