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 -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안방에서 즐기는 세계 여행 스토리
김영연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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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를 좋아한다. 혼자 여행할 때면 일정 중 하루 정도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곤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분위기 자체가 좋다. 저자는 서울에서 한옥 게스트하우스인 '유진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유진은 저자의 딸 이름이라고 한다. 오래 된 한옥을 수리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인 데다, 김치 담그기 체험이나 캘리그라피 체험 등 이런저런 행사를 하고 있어 세계 각지에서 한국 문화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진하우스는 2009년 12월에 한옥체험업소로 등록했다. 한옥체험업의 선구자격인 셈으로, 10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추억들을 담아 온 집인 것이다.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있었던 일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저자가 깨닫고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가까운 일본에서 오는 손님들부터 저자가 이름조차 몰랐던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유진하우스를 다녀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는 자기 집에서 세계 여행을 하는 셈이다.

손님들의 일화를 읽어 보면 다양하기도 하다. 한국의 건물들을 살펴보고 싶어하는 체코의 건축학도, 한국에서 입양한 자녀들의 친부모를 찾아 주기 위해 방문한 노르웨이의 한 부부, 한일역사 바로 잡기를 목표로 삼은 일본인 교사들, 한국에서 열리는 게임 축제에 방문하기 위해 유진하우스를 찾아온 폴란드 출신의 게임 개발자까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폴란드 게임 개발자가 만들었다는 게임을 실제로 찾아 보기도 했다(안타깝게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사연과 추억들을 품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왜 저자가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을 한다는 제목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유진하우스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진하우스를 방문하는 손님들 중에서는 손으로 쓴 엽서로 예약을 하는 손님도 있다. 숙박업소 플랫폼이나 앱, 해당 숙박업소의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5분이면 예약이 가능한 세상이다. 매번 손수 쓴 엽서를 보낸다는 점이 조금 멋지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엽서가 손님보다 먼저 도착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요즘에는 엽서를 보내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나도 여행지에서 친구들에게 편지나 엽서를 보내곤 했는데, 확실히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엽서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정서도 있다. 저자는 유진하우스에서 만난 손님들과 친구가 되어 계속해서 안부를 주고받는다. 멀리서 도착한 엽서가 얼마나 따뜻하고 반갑게 느껴질까. 친한 사람들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고 싶어지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눈에 관한 대목이었다. 유진하우스에서는 눈이 내리면 눈이 녹아 버리지 않게 놓아 두려고 노력한다. 한 번도 눈을 본 적이 없는 손님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과연, 계절이 뚜렷해 겨울이면 어렵지 않게 눈을 볼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눈이 아예 내리지 않는 나라들도 많다. 그런 나라에서 온 손님들은 눈을 직접 보거나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해한다고 한다. 그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까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의 배려심을 갖춘 사람이어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래 된 한옥에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맞는 사람이 쓴 책이 재미가 없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는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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