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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확장판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조기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1월
평점 :
픽사 애니메이션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토이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인사이드 아웃>, <코코>, <엘리멘탈> 까지. 나는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도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빙봉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회사의 대표주자 격이 되었지만, 픽사가 처음부터 이렇게 큰 회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창의성을 지휘하라>를 읽어 보면 픽사의 시작부터, 픽사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었는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밖의 많은 사항에 관해 알 수 있다.
저자는 픽사의 설립자인데, 픽사의 설립 과정에서 그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인 조지 루카스, 그리고 애플의 CEO로 유명했던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저자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특히 조지 루카스의 경영철학을 나타내는 요다의 대사, "한다, 하지 않는다, 둘뿐이다. 해본다는 말은 없어." 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진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좋게 말하면 남다른 비전과 소통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좀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챕터 6, '실패와 공포에 대처하는 법' 파트였다. 모든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실패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내용이다. 무언가를 하려면 출발점에 서야 하고, 출발점이 곧 도착점이 될 수는 없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머리로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나 역시도 그런데, 무언가를 만들 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없어지지는 않을지 두려워하고는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음에도,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의 진척이 늦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픽사의 구성원 앤드루 스탠튼의 "일찍, 빨리 실패하라", "가능한 한 빨리 틀려라" 라는 말을 과거의 내가 들었더라면 더 용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을까?
픽사의 구성원들이 건설적이고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는 태스크인 '브레인트러스트'에 관한 이야기 역시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내 작업물이나 내 의견에 관한 비판을 나라는 인간에 관한 비방으로 듣지 않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내 비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는 일도 꽤 어렵다.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함께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에 관한 신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갔다.
책에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비화들도 여럿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가 사이가 나쁜 자매였던 버전이 있다든가, <토이 스토리>의 우디가 다른 장난감들을 무시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비열한 성격이었던 버전이 있다든가, <주토피아>의 초기 버전 내용이라거나, 전부 봤던 애니메이션들이라 그런지 이런 비화들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밖에도, <라따뚜이>의 다른 쥐들은 전부 네 발로 걷지만 주인공인 레미는 두 발로 걷는다거나 하는 디테일들 역시 신기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픽사 애니메이션을 볼 때 이런 일화나 디테일들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한 조직을 이끄는 경영자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지만,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가 읽어 봤으면 좋겠는 책이기도 하다. 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픽사의 구성원들이 어떤 일들을 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참고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