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홍여우전 - 구미호, 속임수의 신을 속이다
소피 김 지음, 황성연 외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평점 :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섞어 넣는 소설을 좋아한다. 소피 김의 <주홍여우전> 역시 그런 구성의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대한민국에 있는 가상의 도시 신신시인데, 인간들과 요괴들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곳이다. 소설은 한때 '주홍여우'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지금은 은퇴해 조용히 바리스타로 살아가고 있는 구미호 하니, 반역을 일으켜 지상으로 쫓겨나 경찰서에서 일하며 요괴들을 잡아들이는 타락신 석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석가의 목표는 신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시련은 지상의 요괴들을 잡아들이는 일인데, 어느 날 그는 천계의 신인 자신의 형으로부터 매력적인 제안을 받는다. 어둑시니와 주홍여우, 두 존재를 물리치면 천계로 복귀시켜 주겠다는 내용이다. 하니는 주홍여우를 잡으려 하는 석가를 속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해 그의 조수가 된다. 처음에는 로맨스는커녕 앙숙에 가까운 둘의 관계는 '어둑시니' 라는 큰 악에 맞서며 점점 가까워진다. 둘이 살벌할 정도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대체 언제쯤 서로 로맨틱한 관계가 되는 걸까 싶었는데, 소설은 사이가 나빴던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을 재미있게 잘 드러냈다.
가상의 도시인 신신시 역시 재미있게 묘사됐다. 구미호가 커피를 내려 주고, 도깨비가 하는 무기 상점이 숨어 있고, 저승사자와 해태가 형사로 일하는 곳. 매력적인 신을 대상으로 한 가십 잡지가 출판되고 그들의 팬이 존재하는 곳. 영상 매체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반응들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석가와 하니가 서로에게 아무리 강하게 끌린다 해도 그들의 목표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석가는 주홍여우를 제거해야만 신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 하니는 죽지 않으려면 석가를 계속해서 속여야만 한다. 소설의 초입부터 두 사람을 둘러싼 이 문제는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큰 갈등을 만들어내고, 읽는 사람을 계속해서 긴장하게 만든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중대한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여기에 쓰지 않겠다.
꽤 두꺼운 소설이지만 가벼운 문체로 쓰여 쉽게 읽히고, 하니와 석가를 둘러싼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를 염두에 두고 읽다 보면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주홍여우전>을 영상 매체로 접할 날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