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
홀리 그라마치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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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3년 사귄 애인이 생겨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충 풀어 설명하자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 알아가고 잘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 없이,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진 상태의 파트너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의 주인공 로렌은 어느 날 갑자기 그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 다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애인 정도가 아니라 남편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로렌은 친구들과의 즐거운 한때를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가 자신의 남편 마이클을 마주친다. 문제는 그녀는 결혼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기억에 없는 남편이 자신의 집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 되어 있다. 로렌의 핸드폰 앨범에는 남편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가득하다. 주변인들 역시 모두 남편에 관해 알고 있다. 집 안에도 남편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당황한 채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는 로렌에 비해 남편은 태연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남편은 다락방의 전구를 갈겠다며 다락으로 올라가 버리는데, 잠시 후 다락에서 내려온 건 다른 남자다. 제목처럼 로렌의 집 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저런 조사와 실험 끝에 로렌은 자신의 다락방이 남편을 배출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겨우 받아들인다. 이미 존재하는 남편이 다락방에 올라갈 경우, 남편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내려온다. 바뀐 남편에 따라 로렌 자신의 직업, 외모, 집 안 풍경,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한다. 로렌은 남편을 바꾸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는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을 억지로 다락으로 올려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기도 한다. 모처럼 사랑에 빠질 만한 남편을 찾았는데, 실수로 그가 다락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는 로렌의 삶에서 사라져 버린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로렌의 수많은 남편들도 그렇다. 로렌은 남편에 관해, 혹은 남편 때문에 바뀐 주변 상황에 관해 견디기 힘든 단점을 발견하면 남편을 다락방으로 올려보내고 삶을 리셋한다. 정착해서 살아갈 만한 파트너를 찾으려 하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로렌의 다락방이 있는 집을 에어비앤비로 줘 버리고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사는 남편을 만나거나, 이혼 직전이라 별거하기로 한 남편 등등을 만나며 남편을 다락방으로 올려보내는 것도 항상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 남편을 바꾸기 위한 로렌의 행동은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로렌이 결국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에 관해서는 쓰지 않겠다. 다만 주어진 것들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게 그리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언제든 바꿔버릴 수 있게 되자 로렌은 남편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해 점점 성의를 잃어 간다. 뭔가 잘못된다 해도 다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없애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하고 이상적인 상황 같은 건 오지 않고, 무책임한 행동들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메시지와 별개로 소설 내용 자체는 쉽고 재미있게 읽혔다. 다음에는 어떤 남편을 만나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특이한 남편의 등장으로 우스꽝스러운 전개로 흘러갈 때면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가끔 로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남자가 있으면, 과연 어떻게 될지 이루어지긴 할지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다. 결말의 경우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데, 나는 이게 맞는 방향이라고 느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은근히 고민해 볼 만한 점들이 있는 소설이었다. 비일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킬링타임용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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