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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 찢어진 티셔츠 한 벌만 가진 그녀는 어떻게 CEO가 되었을까
매들린 펜들턴 지음, 김미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7월
평점 :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의 프롤로그는 조금 생소한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마치 소설 같다. 커피와 함께하는 아침, 저자의 개 모독, 남자친구인 드루와의 편안한 일상을 회상하는 저자.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는 하루는 드루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점점 불길한 분위기로 흘러가는데, 결국 드루는 권총 자살을 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업체를 경영하던 드루는 돈 문제를 겪고 있었고, 저자는 드루의 죽음을 '자본주의가 집어삼킨' 것이라 표현한다. 프롤로그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저자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가 펼쳐진다.
저자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십대 때부터 안정된 거주지 없이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학교 성적은 좋았지만 그 좋은 성적으로 어떤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지 도움을 줄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경제적으로 암울했던 어린 시절, 슬럼가나 다름없었던 고향에서 저자가 탈출한 과정, 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사고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죽은 남자친구 드루와의 로맨스와 그가 죽기까지의 과정도 실려 있다. 저자의 성장기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의 사업체, 빈티지 의류 기업인 '터널비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가 한 명의 직원과 함께 둘이서 회사를 경영할 때부터 고수했던 원칙이 있다. 그건 바로 모두가 공정하게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경영자인 저자는 주 5일 일했고, 다른 직원인 카밀라는 주 4일 일했다. 그래서 결과값만 보면 저자의 급여가 카밀라의 급여보다 많았지만, 저자와 카밀라의 1일 노동량에 산정되는 급여는 같았다. 사업체가 점점 커지고 직원이 늘어난 뒤에도 저자는 자신이 경영자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 많은 급여를 가져가지 않았다. 이런 사업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신기하다고 느껴졌는데, 저자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사람이 꼭대기에 돈을 쌓아두지 않을 때 추가적인 현금 흐름이 얼마나 확보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받는 돈을 줄이고 자신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
터널비전에서 놀라운 점은 급여 산정 방식뿐이 아니다. 터널비전은 주 4일 근무제와 무제한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무제한 유급휴가란 말 그대로, 직원이 아프거나, 정신 건강을 위해 쉬고 싶거나, 휴가를 떠나고 싶을 때 등등 쉬고 싶을 때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방침이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터널비전에서는 현실이다. 저자는 주 4일제와 무제한 유급휴가 두 가지 모두 결과적으로는 공동체의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누군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집에서 쉬는 대신 사무실 본인의 자리에서 짜증을 부리거나 분위기를 흐리면 다른 직원 모두에게도 악영향이 간다는 것이다.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하면 된다. 누군가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하면 다른 직원이 그를 도울 텐데, 돕는 직원 역시 자신이 쉬고 싶을 때는 다른 직원이 자신을 도울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불만을 품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책을 읽으며 저자가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황을 더 낫게 바꾸기 위해서는 항상 과감한 선택을 했다. 부모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저자가 이런 성공을 거두기까지 운 역시 중요했겠지만, 과감한 결단력과 적극성 역시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챕터 중간중간에 빚을 관리하는 법, 자동차를 살 때 신경써야 할 것, 집을 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 실려 있지만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므로 한국인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래도 그런 방법들을 얻기까지 저자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빚이나 집을 대하는 저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어떤지 정도는 참고가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이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방향성에 관해 다소 오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책에도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흔히 소개되는 방법들(이를테면 위에 쓴 것처럼 직원들을 착취하고 본인이 더 큰 돈을 버는 것과 같은)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긴 하다. 저자가 거기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지만 말이다. 저자는 정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이제 본인이 살아남는 걸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하게 다가온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