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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
닌겐 로쿠도 지음, 이유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7월
평점 :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는 한창 붐이었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를 필두로 일본 로맨스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를 읽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 시절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나쓰키는 어느 날 대학에서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만한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아름답고 어쩐지 매혹적인 데가 있는 이와토 유키라는 선배인데, 너무나 행복한 여름 한때를 함께 보낸 뒤 유키는 마치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다. 학교 사람들은 유키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나쓰키의 가장 큰 친구들마저 어쩐지 유키를 떨떠름하게 대한다. 이미 사랑에 눈이 먼 나쓰키는 강사실에서 서류를 훔쳐보는 일까지 하면서 유키의 본가를 찾아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유키가 겨울만 되면 깨어나지 않고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겨울이 오면 대화도 나눌 수 없고 손도 잡을 수 없는 연인. 유키는 분명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유키에게 반해 다가왔던 남자들이 저 사실을 알고 떨어져 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닌 걸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유키의 가족들, 특히 여동생인 후유미는 나쓰키에게 미묘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갖고 있다. (사실 읽다 보면 적대감이라기보다는 나쓰키를 믿고 싶지만 지금까지의 경험 때문에 믿지 못하겠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더 가깝다) 유키 역시 여동생에게 나쓰키가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라고 할 정도로 나쓰키를 특별히 여기지만, 좀처럼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한다. 그러나 나쓰키는 자신이 유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유키가 겨울에만 잠을 잔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 네 달 가량의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작중 초반 후유미에 의해 중요한 사실이 언급되는데, 유키는 일 년하고도 다섯 달 정도 깨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유키와 가족들은 매년 겨울마다 유키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는다. 나쓰키 역시 유키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 불안감을 나눠 갖게 되고, 그 특이한 병과 더불어 유키라는 여성이 가진 기질적인 매력, 유키가 이전에 만났던 남자들의 존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점점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두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에 관해서 쓸 수는 없지만, 상당히 결말이 강렬한 소설이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어설프게 뭉뚱그리는 결말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 밝힌다. 희귀병이라는 다소 개연성을 해칠 수 있는 설정 역시 무난하게 잘 풀어낸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주인공도 괜찮았지만 유키의 친구인 에나라는 캐릭터가 기억에 남았다. 비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는 나쓰키의 모습, 유키의 곁에 있기를 선택한 나쓰키와 앞으로 점점 나아가는 다른 친구들의 대비 등등 인상적인 부분이 꽤 많았다.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는 무난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면서도, 한 번씩 묘한 울림을 제공한다. 일본 로맨스 소설의 감성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라면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