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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평점 :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그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 방법은 공공선을 추구하고 공동체적 결속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공선, 공동체적 결속. 지금의 한국에서는 마냥 이상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말들이다. 이 책이 논하는 건 미국 민주주의지만, 그게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냥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추천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대한 민주혁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성숙한 진짜 이유가 궁금한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극도로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띤다.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의 발전보다 개인, 혹은 자신이 속한 소집단의 이익과 성공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책에서는 '시민적 덕목'이라고 표현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시민적 덕목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시민적 덕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민적 덕목을 가진 이들을 길러내려는 노력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세계화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내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역시 노동에 관련된 챕터, 특히 노예와 노동자의 지위에 관한 논쟁이었다. 각각의 세력은 남부의 노예들과 북부의 노동자들이 놓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 정치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과정은 본문에 언급된 대로 '단순한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것이 단순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낯선 이념적 개념들로 가득하고 도덕적으로도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이야기다.'. 누군가가 노예로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이를 위해 노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옳지 않다는 사실에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의견에도 뼈는 있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이다. 그들은 북부의 자본가들은 남부의 노예주들과 사실상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본가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노예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 그들이 늙고 병들었을 때 제 주인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의도가 결국 노예제를 옹호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북부의 노동자들이 남부의 노예들보다 딱히 더 나은 처지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어쨌든, 노동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었으며 이런저런 노동관이 제시되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시장 경제 체제의 틀을 깨려고 하거나 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결국 노동 체계에 관련된 이러한 싸움은 노동자들이 체제 하에서 스스로의 노동력을 임금과 교환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자유주의 사상에 힘을 싣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 책의 다음 파트는 자유주의와 공동체, 그리고 자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로버트 케네디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었는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연방정부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옹호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공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 대해 불만을 계속 쌓아 가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불신, 그리고 해소되지 않은 불만을 쌓아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결국 그 불만을 해소하고 시민들이 사회에 신뢰를 쌓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한국 정치가 지금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한국과도 그다지 멀지 않은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서 읽으면서 공감할 여지가 많았던 책이다. 샌델의 저서답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아주 어렵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면서 내용을 되짚어 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특히 아직 사회와 정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