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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뇌 - 인간이 음악과 함께 진화해온 방식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노래하는 뇌>는 음악이라는 주제를 뇌과학, 그리고 인류학에 기반해 다루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적혀 있는 '인간이 음악과 함께 진화해온 방식' 이라는 문장을 보면 이 책의 주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는 인류와 노래 - 우정의 노래 - 기쁨의 노래 - 위로의 노래 - 지식의 노래 - 종교의 노래 - 사랑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이 목차는 쉽고 직관적인 단어로 적혔지만 실제로 내용을 읽어 보면 조금 더 복잡하기는 하다. 이를테면, '우정의 노래' 파트는 음악과 전쟁, 정치, 사회 운동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기쁨의 노래' 파트에서는 음악과 도파민, 그리고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꽤 어려운 내용을 다룬 부분이 많아서 읽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책에 언급된 노래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실제로 들어보기도 하며 읽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내가 이 책의 2장, '우정의 노래'를 읽으며 떠올렸던 곡이다. 음악과 사회 운동에 관해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다. 다시 만난 세계는 걸그룹의 데뷔곡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민중 가요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곡으로 결집했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우정의 노래' 파트는 군인들이 부르는 군가, 정치적 소수자들의 노래, 사회 운동의 수단으로서의 노래 등 인류가 음악을 매개로 삼아 규합되어 온 역사에 관해 설명한다. 특히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전쟁에 반대하는 노래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뇌과학자이기 때문인지, 책에서는 인간의 행동 양상이나 진화를 뇌과학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의심, 신뢰, 화해, 심지어 사랑 등 사실상 모든 감정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초기인류 중에서도 전투에 임하기 전에 함성을 지르는 행동이나, 휘파람을 암호로 사용하는 등 음악이라는 효과적인 수단을 통해 소통한 집단이 생존하기에 유리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아직 아마존에서 수렵채집을 하는 부족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음악은 언어나 글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음악치료의 효과, 음악의 힘에 대해서도 믿지만, 음악치료와 관련된 실험은 대부분 제대로 된 대조군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음악치료의 효과에 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음악치료라는 명목으로 아픈 사람들을 속이거나 해서는 안 되니, 음악치료의 과학적 효능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해 봐야 한다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게 있었는데, 치매 등의 이유로 극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들도 자신이 예전에 불렀던 노래에 관해서는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문자나 언어에 비해 기억에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 밖에도, '지식의 노래' 파트는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어떤 지식들을 암송하는 방법과 그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도 중국의 나라 순서를 외우기 위해 '산토끼 토끼야'에 맞춰 은-주-춘추전국,진-한-으로 이어지는 노래를 외운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의 교육과정에서는 나라 순서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이런 식으로 외워야 하는 개념을 노랫말에 붙여 부르는 방식을 아주 흔하게 사용했다. 아마 비단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는 나라 이름, 원소기호, 성경 내용 등 수많은 것들을 노랫말에 붙여 공부하고 외웠으니까.
내가 무의식적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가 사실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신기하다. 이전의 수많은 인류 역시 음악을 통해 위로 받고, 사랑을 속삭이고, 종교를 전파하고 공부를 했으리라는 사실 역시 그렇다. <노래하는 뇌>는 음악과 인간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음악이라는 개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