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ㅣ 헝거 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9월
평점 :
<헝거 게임>시리즈 영화를 올해 정주행했다. 강인하고 심지 굳은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의 캐릭터는 참 매력적이었고, 캐피톨과 12구역 사이의 대립에 대해 묘사한 세계관 역시 보는 이를 흥미롭게 하는 탄탄함을 갖추고 있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헝거 게임은 무고한 소년소녀들이 서로 죽이도록 만드는 잔혹한 시스템이다. 헝거 게임 시리즈를 보다 보면 그 잔혹한 시스템의 한 축을 떠받들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바로 판엠의 독재자인 코리올라누스 스노우다. 헝거 게임 시리즈에서 스노우는 잔혹하지만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그리고 피와 장미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그 코리올라누스 스노우의 이야기다. 인정사정 없는 독재자인 스노우에게도 당연히 소년 시절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치밀하고 잔인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헝거 게임 시리즈 프리퀄의 주인공이 스노우라는 건 좀 놀라웠다. 독자들이 좀 더 우호적으로 느낄 만한 다른 좋은 인물들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를 읽는 동안에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둘 수 있다. 스노우의 앞에 닥친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에도 모자라니까. 코리올라누스 스노우는 한때 고귀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몰락해 버린 스노우 가문의 마지막 남은 둘(나머지 하나는 그의 사촌 누이인 티그리스다)중 하나다. 나이가 들고 아무런 힘도 없는 그의 할머니,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티그리스가 그의 가족이다. 스노우 일가의 세 명은 완전히 낡은 아파트에서, 그들이 몰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 그러던 와중 음식조차 풍족하게 먹지 못하며, 빈곤을 숨기는 게 급선무인 스노우의 삶을 바꿀 계기가 찾아온다. 바로 스노우가 제 10회 헝거 게임의 학생 멘토로 선정된 것이다. 헝거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건 스노우 본인의 인생을 역전할 기회이자 가문을 재건하기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노우와 짝을 짓게 된 조공인은 우승하는 데 가장 불리하다고 평가받는 12구역의 여자아이인 루시 그레이 베어드다.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 베어드를 최대한 이용할 마음을 먹게 된다.
루시 그레이 베어드는 어딘가에서 구한 화장을 하고, 무지갯빛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그녀는 스스로를 처음으로 보이는 자리에서 노래를 함으로써 모두의 주목을 끈다. 루시에게 음식을 구해다 주고, 루시의 삶에 대해 들으며 스노우는 점점 루시라는 인물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스노우 본인과 루시 모두를 위해 루시를 헝거 게임에서 우승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학생 멘토들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사고가 발생한다. 어떤 멘토는 헝거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살해당하고, 어떤 멘토는 뱀에게 물려 끔찍한 독을 주입당하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진다. 구역에서 캐피톨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구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세자누스의 돌발 행동들 역시 헝거 게임의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만든다.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 베어드가 헝거 게임에서 우승하게 만들 수 있을까? 헝거 게임이 끝난 뒤 스노우는 어떻게 될까? 이런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서평에 쓰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스노우의 미래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는 판엠의 독재자가 된다.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는 코리올라누스 스노우가 잔혹한 독재자가 되는 미래를 알고 있다. 그랬던 스노우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하고, 가족들과 사소한 행복을 맛보고, 사랑에 빠지고 달콤한 꿈을 꾸고, 갈팡질팡하고 초조해했던 과거가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스노우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이런 소년이 나중에는 그 스노우가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씁쓸함과는 별개로, 이 책은 헝거 게임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몰랐던 판엠, 캐피톨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본편에는 나오지 않은 또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놓을 수가 없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