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 - 식욕 뒤에 감춰진 여성의 상처와 욕망
애니타 존스턴 지음, 노진선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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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여성을 주변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어떤 친구들은 굶기와 폭식을 반복했다. 지나치게 많이 먹었다 싶으면 억지로 토하는 게 습관이 된 친구도 있었다. 저체중이었지만 자신의 허벅지나 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도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체중이나 몸매에 대한 강박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거나 잃어버렸다.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의 몸은 사실 도달하기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팔다리가 길고 가늘지만 가슴은 크고 허리는 잘록하고 배는 납작한 몸매. 몸에 '여성적인' 곡선이 없거나, 과체중이거나, 허벅지나 발목이 굵다는 이유로 수많은 여성들이 비하를 당하고 기준 미달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여성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하던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는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가 우리의 감정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섭식장애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음식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책이라고 하는 쪽이 조금 더 적합할 것 같다.

거식증이나 폭식증, 먹고 토하는 행위, 특정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 섭식장애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섭식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저한 식단을 짜고 그 식단을 준수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굶거나 폭식을 하거나 토하거나 음식에 집착하는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 소개한 어떤 여성은 가족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아픈 아이'가 된다. 성적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어떤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성적인 대상이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폭식을 하게 된다. 외모나 체중에 대한 압박 때문에 섭식장애를 갖게 된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마음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과정 없이 의지만으로 섭식장애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렵다. 오히려 철저하게 짠 식단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더한 자기혐오나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내면에 두 개의 그릇이 있다고 가정한다. 하나는 음식과 물처럼 몸의 자양분을 담는 호리병 모양의 그릇, 다른 하나는 관심이나 애정, 인정과 같은 마음의 자양분을 담는 하트 모양의 그릇이다. 우리는 종종 이 두 그릇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허기를 몸의 허기로 착각하고 음식을 꾸역꾸역 먹곤 한다. 하지만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건 앞의 그릇뿐이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허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진짜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문제가 마음에 있다는 걸 알고 나면, 당장 제대로 된 식생활을 영위할 수 없더라도 일상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섭식장애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사 일지 쓰기를 권한다. 어떤 음식을 언제 먹거나 마셨는지, 먹기 직전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배가 고팠는지를 가능하면 바로 기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먹는 음식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일지를 쓰다 보면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특정한 감정 때문에 음식을 먹은 경우를 꽤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음식을 먹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각 챕터에는 신화나 동화, 옛날 이야기가 하나씩 소개되곤 한다. 짧은 이야기들을 읽어 보며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그 문제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리라 생각된다. 책이 하는 말은 많지만 섭식장애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노력하고, 자신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러 여성들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그 중 누군가에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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