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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인 서울 ㅣ 사계절 1318 문고 122
한정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3월
평점 :
<변신 인 서울>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제목에서부터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작가 후기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징그러운 해충으로 변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변신 인 서울>의 주인공인 반희는 어느 날 흰 토끼가 되어 버린다. 해충이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반희는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정말로 토끼가 되어 버렸다는 현실을 깨닫고 당황한다. 게다가 반희는 지난 한 달 정도의 기억이 없는 상태인데, 핸드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이 도착한다.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토끼가 되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에 대처할 수 없는 반희는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일들과 서서히 마주하게 된다. 과거의 반희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그래서 반희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반희의 부모는 반희를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여긴다. "이번 달에 시험 잘 봐서 사람 구실 하기로 했잖아."라는 반희 엄마의 대사가 이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시험을 못 본 과거의 반희는 사람이 아닌 걸까? 적어도 반희 부모에게는 그런 것 같다. 반희는 부모가 만족할 만한 성적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용돈도 절반으로 줄었고, 잠도 매일 한 시간 덜 자야 했고, 먹을 때도 눈치 보고' 살아야 했으니까. 책을 읽다 보면 반희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반희를 응원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중에서 반희 부모가 하는 말들을 내내 듣고 있노라면, 왜 반희가 '응원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났는지 알 수 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니까. 반희가 좋은 부모 밑에서 존중받으며 자랐다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여튼 절박한 상황에 몰린 반희의 편을 들어 주는 건 누나 반지뿐이다. 반희는 발달장애가 있는 누나 반지를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반지만이 반희를 도우려고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토끼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이 조금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기에서 토끼란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어떻게 인간이 토끼가 될 수 있냐는 의문을 가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사람들을 필요한 존재와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나누고 싶지 않지만, 이미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분류되고 선택받거나 버려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누구라도 언제든지 토끼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