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플링
줄리 머피 지음, 심연희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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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사람이 주인공인 책은 흔하지 않다. 특히 뚱뚱한 여자라면 더 그렇다. <덤플링>의 주인공은 뚱뚱한 소녀인 윌로딘이다. 윌로딘은 이렇게 생각한다. "TV나 영화에 뚱뚱한 여자애가 나오는 게 싫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시선이 카메라에 뚱뚱한 사람을 담아도 괜찮을 때는 단 두 경우일 뿐이기 때문이다. 뚱보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비참하게 여기는 모습 아니면 주인공의 유쾌한 절친으로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윌로딘은 주인공의 유쾌한 절친이 아니라 주인공이지만, 가끔 스스로의 모습을 비참하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윌로딘이 스스로를 가끔 비참하게 여기게 되는 건 결코 윌로딘의 잘못이 아니다.

윌로딘은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소녀였다. 미스 틴 블루 보닛 미인대회의 우승자 출신인 어머니와는 가끔 갈등을 빚고,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 잘생기고 매력적인 보를 만나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보와 가까운 관계가 되면서부터 윌로딘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다 보면 윌로딘은 잘생긴 보가 뚱뚱한 자신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 역시 윌로딘을 괴롭힌다. 사실 윌로딘은 당당하고 매력적이지만, 세상은 언제나 윌로딘이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방해해 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윌로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름과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어머니는 은연중에 윌로딘이 넘어야만 할 산 같은 존재가 되어 간다.

변해 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초조해지고, 남자 친구('썸남'에 가깝긴 하다)나 친구와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괴로워하던 윌로딘은 결국 미스 틴 블루 보닛 미인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 버린다. 거기에 뚱뚱한 체형과 눈에 띄는 옷차림으로 항상 놀림의 대상인 밀리, 다리에 장애가 있어 교정 신발을 착용하고 다니는 아만다, '도미니카계 흑인이자 뻐드렁니 난 레즈비언인' 해나가 합류하면서 미인대회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미인대회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읽다 보니 미인대회의 결과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사실은 윌로딘과 친구들 역시 다른 많은 여자아이들처럼 미인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줄거리의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어떤 인물들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윌로딘의 이모인 루시다. 루시는 200킬로그램이 넘게 나가는 여성이었고 서른여덟 살에 심장마비로 죽어 작중에서는 이미 고인으로 나온다. 그러나 루시는 윌로딘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인물이고, 언제나 윌로딘과 함께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윌로딘은 어렸을 때 무용 교실에 가려다가 뚱뚱한 자신의 모습이 창피해서 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그 때 루시는 윌로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생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 사람들이 뭐라 말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많이 생각하며 보냈지. 그래서 가끔은 슈퍼마켓이나 우체국도 가지 못했어. 물론 그건 사소한 일이었지. 하지만 때로는 정말 특별한 일인데도 결국은 하지 못하게 될 때도 있었어.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무서워서 결국 난 안 될 거라고 포기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시선에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나는 그 시간을 죄다 낭비했지만 너는 그럴 필요 없다고. 일단 저 안에 갔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 나면 다시는 가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지금 너한텐 어쨌든 기회가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너무나 멋진 어른이다. 세상의 모든 소녀들에게 루시와 같은 이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루시 이모의 존재 없이도 수많은 윌로딘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조롱 섞인 시선이나 경멸 어린 말들을 듣고, 입고 싶은 옷도 마음껏 입지 못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뚱뚱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는 완전히 사라져야만 한다. 아니, 결과적으로는 이목구비의 모양이나 체형, 피부 색과 같은 것들이 더 나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날이 언제쯤 되어야 올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세상은 점점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덤플링>은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만한 책이다. 외모 때문에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찾는 데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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