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 - UNTRUE
웬즈데이 마틴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UNTRUE : 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이하 UNTRUE)는 여성들의 섹스와 성적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남편이나 파트너를 두고 다른 사람과 성적 관계를 갖는 수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많은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부일처제가 여성을 구속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영원히 배타적이면서도 상대방에게 충실한 일대일의 연애/결혼 관계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책에서도 언급되는 폴리아모리(한 명 이상의 파트너를 만나는 것, 다자연애)에 관한 담론들은 슬슬 우리 사회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절대다수의 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만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형태의 연애나 결혼 생활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열어 두지 않는다. <UNTRUE>는 불륜이나 다자연애에 대한 본인의 견해와는 무관하게, 연애와 결혼에 대한 사고를 넓혀 줄 만한 다양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책이다.

두 사람이 서로만을 영원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살다 보면 그렇게 살아가는 연인이나 부부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분명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부부 관계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아무런 문제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연애나 결혼에 질려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 바람을 피우고, 사랑이 식은 채로 무의미한 관계를 이어 가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다. 그렇다면 일부일처제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의 제도가 맞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제도라면, 일부일처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리는 없으니까. <UNTRUE>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어떤 전략이었으며, 그 전략도 지금은 최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책에 언급되는 사례들 중 하나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나미비아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인 힘바 족은 혼외정사에 관대하고 공개적이라고 한다. 즉 간통을 금기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바 족의 여성들은 남편이 있더라도 다른 남성들과 관계를 가지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를 '오모카' 아이라고 한다. 오모카란 밀회를 즐긴다는 은어이다. 힘바 족의 문화가 이렇게 개방적인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힘바 족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물려 줄 재산이 거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비교적 어릴 때부터 집안의 일을 돕거나 가축을 돌봄으로써 가정에 보탬이 된다. 즉, 아이의 존재는 보탬이 될 뿐 큰 부담이 되지 않으니 남편의 입장에서는 부인이 낳은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더라도 비교적 관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힘바 족의 남성들도 여성들처럼 성적으로 개방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여자친구를 만나는 동안 부인이 남자친구를 만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남편은 자신의 부인이 낳은 모든 아이를 책임지기 때문에, 오모카 아이의 생존율도 높다고 한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있어 쉬운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음에도 책이 잘 넘어가는 편이었다.

<UNTRUE>는 다양한 성 담론을 다루고 있다. 여성들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일부일처제가 허상에 가깝다는 주장, 일부일처제는 현대 사회로 오면서 고착화되었을 것이라는 연구, 폴리아모리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흑인 여성들이 받는 성적 억압과 흑인 여성들을 둘러싼 편견,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들의 섹스, 핫와이프(남편의 동의 하에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는 여성)와 그 남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여성의 성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터부시되기 쉬운데, 이 책은 아주 솔직하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불편한 이야기도 있고,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책 뒷표지에 있는 '성 담론에 과학, 철학, 문화인류학을 결합한 책'이라는 평가가 딱이다. 불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불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성의 성 해방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권위 있는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여성의 성 이야기를 하는 책이기 때문에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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