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머리카락 -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21
남유하 외 지음 / 사계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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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푸른 머리카락>은 제 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작과 우수작들을 모아 놓은 단편집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낙원과학소설상이라는 상을 알게 되었다. 과학소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려운 이미지가 강했다. 복잡한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과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따분하게만 받아들여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다른 책에서 과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라면 어떤 소설이든 과학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을 읽었다. <푸른 머리카락>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 역시 전부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이지만 모두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최근 SF 소설에 관심이 생겨 SF 소설들을 몇 편씩 읽어 보고 있는데, <푸른 머리카락>은 그런 상황에서 단비 같은 소설집이었다. 과학적 소양이 거의 없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과학 소설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들이다. SF 소설에 관심이 있지만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SF 입문 소설로 추천할 만 하다.

단편 <푸른 머리카락>에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 지구에 정착해야만 했던 '자이밀리언'이라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얼핏 지구인과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그들은 그들을 대상화하는 호기심, 또는 그들을 적대시하는 편견과 혐오 속에서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자이밀리언 소년과 지구인인 '나' 사이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그러나 외모가 지구인과 다를 뿐, 작중의 자이밀리언 소년은 분명히 지구에서 태어난 지구인이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외계인을 차별하고 멀리하는 수많은 지구인들을 쉽게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자이밀리언이 아니지만 자이밀리언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자이밀리언을 대하는 지구인들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사회적 소수자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준 소설이었다.

단편 <로이 서비스>는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는 소설이다. 사람과 완전히 같은 생김새를 하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을 하는(혹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안드로이드를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안드로이드와 사람을 엄밀히는 구분해 내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단편 <고등어>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든 작품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기도 하고, 읽으면서 충분히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나쁜 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은 때로 설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막상 외계 생명체를 마주하게 된다면 설렘보다 훨씬 큰 감정은 두려움일 것이다. 내가 이전까지 아예 알지 못하던 존재와 조우하면서 마냥 설레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고등어>는 알 수 없는 의사 표현(이 아닐지도 모르지만)을 하는 외계 생명체를 통해 그런 두려움, 걱정과 기대가 섞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작품의 결말 이후가 궁금하지만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년도 고양이도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단편 <오 퍼센트의 미래> 속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기대 수명을 알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수명에 맞게 인생 계획을 세우곤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것 같다. 물론 기대 수명을 꼭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수명을 알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얼마나 살 수 있는지 거의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나는 내 기대 수명을 확인할까? 나는 아마 확인할 때의 두려움이 너무 커서 확인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아는 쪽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편 <알람이 고장난 뒤>는 사람들이 중앙 정부에 의해 배꼽에 시계를 단 채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배꼽 시계'라는 말을 정말 말 그대로 해석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르고, 그래서 결국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게는 그 다른 선택이 크게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단편 <두근두근 딜레마>는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 바라는 결말을 여기에 적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많은 내용을 여기에 적게 된다. 주인공이 살아가는 사회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모호해질 수 있는 사회다. 자신이라는 개념은 물론이고, 사랑조차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랑도 사랑일까? 그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서 그런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눈동자 색을 바꿀 수 있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마음에서 샘솟는 사랑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랑을 구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집 <푸른 머리카락>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청소년 소설의 성향을 띠고 있는 작품들도 많다. 성장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나 같은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가슴이 울리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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