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 치리 높새바람 51
신이림 지음, 배현정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싸움 닭 치리 > 신이림 지음 (바람의 아이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보면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동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인간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너무도 유명한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인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케이지 사육과 동물들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건방진 도도군>을 보면서 버려지는 애완견의 삶과 보청견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싸움 닭 치리>는 그 중 가장 부끄러운 인간 군상을 만나게 하는 책이었고 책장을 넘기며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되는 책이었다. ‘투계’! 권투, 투견, 투우, 투계, 검투사 등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투’라는 글씨는 싸운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폭발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는 것도 우리나라 법에서는 ‘자력구제금지의 원칙’이라는 게 있어서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권투는 합법적으로 링 위에서 싸우는 스포츠이고, 투우 혹은 소싸움은 스페인과 우리나라에서 전통으로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행해진다. <글레디에이터> 라는 영화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오락거리로 원형 경기장에서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싸움 노예들의 처절한 삶을 봤다.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과 불 구경이라고 했던가? 이 책의 소재인 투계는 불법이다. 판 돈을 걸고 닭끼리 싸우게 하는 일종의 도박이다. 어린이들이 보는 책의 소재로 투계가 나와 사실 많이 놀랐다. 그리고 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닭들이 투계로 훈련되는 과정과 실제 경기 상황에 대한 묘사가 너무 실감나서 또 놀랐다. 그냥 돈 걸고 싸우게 해도 불법 도박인데 사람들은 더 흥미진진하고 속전속결의 경기를 보겠다고 닭 발목에 낫칼이라는 연장을 채운단다. 그 안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닭들은 피를 흘리며 옆에 있는 고무대야에 던져지는 거다. 그 안에서 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는 상황이기에 더 훈련을 하고 공격적으로 살아야 하는 투계들은 주인 닭장에서 탈출하지 않는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다.
아버지가 투계로 살다 죽은 뼛속부터 투계 유전자를 물려받은 깜이와 그런 깜이의 풍모와 능력을 질투하는 치리는 처음엔 가야리라는 마을의 한 닭장에서 살고 있다. 주로 치리가 깜이를 질투해서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투계 도박을 일삼는 챙모자가 닭장 주인에게서 깜이를 사가고, 얼마 뒤 털보라는 사람이 치리를 사가며 이들은 투계 도박꾼들의 투계로 훈련되고 살아가게 된다.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싸움닭으로 자랄 훈련을 받고서 경기에 투입되는 이들의 운명이 어찌될 지 궁금해 자꾸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특히 치리가 다시 만난 깜이는 예전의 깜이가 아니었다. 몸을 자해하기도 하고 실제 경기 속에서도 상대방의 낫칼 공격에도 자기 발끝을 오무려 버린다. 그럼 죽을 수도 있는데.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깜이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동문학평론가 김서정님이 쓴 책 뒤편의 해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에게는 크건 작건 선택의 여지가 있다. 깜이에게도, 치리에게도, 늙은 수탉에게도, 털보에게도, 챙모자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어느 쪽을 택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닭도 그것을 깨달을 줄 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수를 거듭하며 결과를 감내하고 꾸준히 신중하게 선택을 해 보는 훈련이 아닐까.” (말로 들려주시는 것 같아 큰 따옴표를 해서 인용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아이들도 투계로 훈련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고, 실력을 키워서 앞으로 돈 많이 벌며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 지금은 참아야 한다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채우는 훈련용 쇠사슬과 경기용 낫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갑의 이익을 위해 을과 을의 싸움이 계속되는 사회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가 더 미안하다. 어떤 식의 자기 삶을 선택해도 존중받고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어른들부터 나서야 한다. 이미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