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통행증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부음으로 그를 위해 1928~1930년에 걸쳐 집필하여 출간한 것이다. 닥터지바고 라는 허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통해서가 아닌 작가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듣는 다는 점에서 자전적 에세이는 좀 더 호기심이 갔다. 작가의 신비로운 일상을 들여다 볼 것을 기대하면서 왜 안전통행증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을까 궁금해 하면서 읽었지만 작품 어디에도 안전통행증에 대한 언급을 찾지 못했다. 도대체 안전통행증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마음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부터 사춘기를 거쳐 1930년 주목 받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쫒아가느라 못 찾았던 것 같다. 더구나 처음부터 작가의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음악에서 철학 그리고 시로 오기까지 너무나 그 변환의 과정이 순간적이지만 결코 충동적이지 않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순수한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작가가 지키고 싶어 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일관된 목적들이 타인의 인정과 명성을 뒤에 두고 라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과 상황은 안전통행증의 작품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씌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너무나 특이한 점은 앞의 안전통행증과 뒤의 사람들과 상황은 같은 인물의 자전적 에세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서인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후의 작품은 보다 군더더기가 없이 담백하고 간결하게 읽히며 어떤 인물에 대한 신성시에 가까운 추종보다는 자신에게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 그 부분을 인정하고 또한 그 영향력 아래에서 어떻게 벗어나고자 했는지 말해준다. 늘 튀고 화려한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를 그대로 그리고 싶어 했던 작가의 목소리가 마치 다른 시간대에 두 사람이 만나 같은 상황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그런데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 하고 있어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세계 최고의 작품들은 아주 다양한 것들을 서술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에 대한 인식 가능 자체는 이민 미래이며, 인간의 미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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