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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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전쟁의 암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영국 중산층의 불안한 심리를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조지 볼링은 안정된 직업과 가족을 가진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그는 어느 날 신문에서 전쟁의 기운을 감지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다시 가봐야겠다는 충동으로 여행을 떠난다. 과거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추억이 깃든 낚시터, 골목길 등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었지만, 마침내 마주한 고향은 산업화와 개발에 밀려 전혀 다른 장소가 되어 있다. 전쟁이 다가오는 가운데, 고향이라는 마지막 피난처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은 한 개인의 상실감을 넘어서 시대 전체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읽는 내내 나도 함께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자주 떠올리며 나를 지탱하고 있다 느끼던 과거의 ‘좋았던 순간들’이 그저 내 속에서 미화된 허상이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결국 돌아간 과거의 장소는 기억 속의 모습이 아니고, 나 역시 그때 당시의 내가 아닐 거라는 점이 씁쓸하기도 했다.
소시민의 불안, 예감처럼 드리워진 전쟁의 기운,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는 감정. 이 소설은 거창한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는데, 그래서 더 깊게 다가온다. 작가는 한 사람의 회고라는 형태를 빌려 당대 사회의 공기를 불어넣는데 능숙하다. 당장의 전쟁보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일상의 틈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이 소설을 읽으며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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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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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현실을 오웰이 직접 취재해 기록한 르포르타주인데, 르포는 처음 읽어서 신선했다. 1부에서는 랭커셔와 요크셔 지역의 탄광촌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주거, 식사, 노동 환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2부에서는 오웰이 자칭하는 중산층 지식인의 시선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문제점과 계급 간 거리감에 대한 문제 등을 다룬다.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비판이 담겨 있다. ‘가난’이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한 층위의 경험과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고서인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본 것과 고민해오던 것들을 자연스러운 맥락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잘 읽혔다.

1936년에 쓰인 글이지만, 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는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다. 그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게 더 문제였다. 오웰은 노동자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지식인의 허영, 사회주의 내부의 위선을 비판한다. 이런 문제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내 붙잡으려 했던 ‘연대’라는 단어가 오래 남는다. 차가운 시선과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그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고 그걸 계속해서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책이 때로는 가장 날카로운 도끼가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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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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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이 집필한 수많은 에세이 중 현재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줄 에세이 31편을 엄선해 묶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는 글을 쓰게 된 배경과 과정을 ‘자기 과시욕’, ‘미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특히 스페인 내전과 제국주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가 단지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개입의 통로라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짧지만 밀도 있는 이 글은 작가로서의 오웰의 핵심 사유를 집약한 일종의 선언문이라 느껴진다. 동시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정직하게 쓰는 것에 대한 그의 신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감정이나 생각을 미화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태도 말이다.

오웰의 글들을 읽다 보면 왠지 자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비슷해서, 오웰이 고백을 핑계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솔직해질 수 있었다. 지난한 일상을 보내면서 종종 흔들릴 때면, 나에게도 아주 곧고 단단한 무게 중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가끔은 글을 쓰고 무언가 보고. 이런 모든 행위가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내 자리를 확인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조금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당장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 독서와 글쓰기라는 행위가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누군가의 시야를 조금은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금 되살려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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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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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구원하는 현재. 그럼으로써 다시 구원받는 현재. 그 모순적인 순환이 다행스럽고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매 순간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떻게 껴안고 살아갈 것인지 묻고 있는 책.

20년의 시차를 두고 동서로 이어진 마을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처음엔 낯설었는데, 이내 이야기에 빠져서 몰입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드러나는 사실에 안타깝기도, 불안하기도 했다. 흐름을 맺고 끊는 시점이 절묘해 자꾸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특히 후반부부터는 멈출 수가 없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오잔. 이 세 존재 사이로 연결된 시간의 흐름과 선택이 어떻게 각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의 흑백 표지 그림을 보면서는 고요함 속 혼자 남겨진 언젠가의 오잔이 여전히 호수를, 그 너머의 어느 시간을 응시하고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슬펐다.

과거와 현재, 후회와 자책, 애도, 연민… 내 안에 숨겨두었던 것들과 마주하게 만드는 책이라서 고통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기분도 들었다.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문장들을 읽으며 조금 울기도, 한숨을 뱉기도 했는데 그 기분이 나를 돌보는듯한 느낌이라 좋았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연약한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끝없이 가정해 보다가도 그저 묵묵히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계속 걸어가는 일. 그게 지금의 내가, 계속 이어질 삶 속에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이 어쩐지 두렵다가도, 안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슬프고 다정한 책을 발견하고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시간의계곡 #소설 #소설추천 #애도여행 #시간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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