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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사랑 ㅣ 청목정선세계문학 8
D. H. 로렌스 지음, 강만식 옮김 / 청목(청목사) / 1989년 4월
평점 :
절판
건전한 섹스에 건강한 정신!!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만큼 '후끈'한 작품이 아니다. 물론 소설 중간 중간에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할 정도로 뜨거운 장면도 몇몇 있지만, 지금 세상에 나도는 다른 포르노그라피들에 비하면 세발에 피다. 그만큼 약발이 달았다는 이야기다. 그당시 영국 비평가들이 단순한 성애소설이라며 치부했던 것과 달리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놀랍도록 지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이다. 표면적으로 두드러진 몇 가지 점만 살피고, 그저 싸구려 소설로 치부해 버렸던 영국의 점잖은체 하는 비평가들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밖에 안나온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의 주제는 성이다. 가장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사람들이 드러내기 꺼려하는 성. 로렌스는 섹스-성이야 말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섹스없는 삶은 죽은것과 다름없다. 로렌스가 생각하는 성은 아주 신성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가장 순수한 본능이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가족을 형성하고 사회를 형성한다. 인간사회의 근본을 형성하는 것은 섹스라고 로렌스는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감추어 두고, 피하려고 하는 것을 반대한다. 낭만적인 연예담에 그려지는 적극적이지 못한, 그저 손만 잡고 키스하는 이성간의 사랑을 그는 솔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순수한 욕망을 감추어 오히려 인간을 더 황폐하게 만든다.
반면에 로렌스가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는 대상은 바로 산업사회, 문명사회이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정신만을 강조하고 육체적인 생활-섹스를 무시한 사회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러한 산업사회, 문명사회, 정신만을 고집하는 사회를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클리포드다. 육체적으로 불구가 된 클리포드는 오직 정신에만 집착하게 되는데, 처음에 그는 훌륭한 문학가에서 나중에는 비상한 탄광산업의 고용주로 변신하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의 육체적 나약함과 죽은 본성을 덮어두기 위한 방편일뿐이다. 이러한 인물의 종말은 오직, 정신병자 적이고 히스테리적인 광기어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로렌스는 서문에서 60이 다 된 젊잖은 목사로 알려진 인물이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수십년동안 착실한 결혼생활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커밍아웃한 일등을 통해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정말로 인상깊었던 것은 결코 흔한 멜로로 전락하지 않은 마지막 결먈 부분이었다. 로렌스는 좀더 차분히 자신의 입장들을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사실 너무나 보수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족을 찬양하고 일부일처제를 강력히 주장하며, 건전한 성이 있는 기독교적 생활을 강조한다. 이러한 작품이 같은 동료들에게 오히려 공격받았다는 사실은 씁쓸한 웃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