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을 그리다 - 내실에서 꿈을 찾은 예술가
정항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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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남녀평등이라는 말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표면적으로 평등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지금도 유리천정이 존재하고 알게 모르게 가려진 장벽이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교가 가져온 풍속이 아직 많이 잔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물며 유교가 정치사상이었고, 관습이었고, 통념이었던 시대에 여인으로 이름을 남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름이 아니고 자신이 지은 호만 전하는 것이죠. 사임당 말입니다. 아무리 조선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는단 말 이예요. 사임당이 남자였다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남자 였다면이 아니고 여성이기 때문에 더 섬세하고 학문적 깊이도 있었던 것 아닐까 해요. 다만 덜 알려지고 이름을 알리기 힘들었던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사임당은 딸 다섯인 집안의 둘째 딸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진사 신명화 이고 오죽헌에서 태어나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네요. 이이의 어머니이시고 오죽헌에 가면 영정이 있어서 모두가 기억을 하고 계신 분이죠. 단편적인 일화를 통해 사임당의 교육수준과 품성을 예상할 수 있고 주자의 학문과 생을 알고 있을 정도로 당시의 여인으로서는 학문적 깊이와 가정 교육역시 잘 받은 집안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꼭 그런 것 때문에 사임당이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어릴 때는 사임당은 그냥 이이의 어머니였습니다. 율곡 이이를 키워준 사람, 현모양처의 표본 정도였죠.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것을 짚어 보아야겠죠.

 

사임당의 그림을 유심히 본적이 있었나? 스스로 질문을 해봅니다. 국립박물관에 산수도가 있다고 하는데,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고, 오죽헌에서 본 그림들이 사임당의 그림이었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 역시 잘 알지 못하는 것 알려지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섬세함과 세밀함 그리고 남성의 그림과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는 것은 책의 사진으로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저자는 어머니로서의 사임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익히 잘 알려져 있고 율곡이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식들에게 전해진 사임당의 그림 솜씨와 글의 유려함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많이 들어도 흘려들은 것이 많아서 새롭기는 하지만 이 부분이야 현모양처의 모습에서 많이 들었던 부분이라 크게 흥미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사임당을 시인 혹은 화가로 보거나 큰 사상가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성으로서 조선시대 초기를 살면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던 사회 풍속에서 자신을 호를 남길 만큼의 위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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