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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리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우가 번쾌에게 술을 권하고 안주를 권하는데 더 마실 수 있겠느냐는 항우의 말에 번쾌가 대답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의미상으로는 술을 마다하지 않는 주량이 세다는 말이라고 하는데 술 앞에 장사는 없다는 말도 있지요. 이 책의 주인공도 두주불사를 외치는 여인입니다. 저는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술자리를 가질 기회는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남편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지다 보면 술자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읽을 수 있어서 좋을 때도 많습니다. 오래 보았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술은 남자들을 호기롭게도 하고 때로는 작은 논쟁으로 투탁거리기도 하더군요.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을 정도까지는 가보지 않아서 남자들의 세계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직장인 여자예요. 마침 저는 직장 생활도 하지 않아서 직장 생활하는 여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문득 책을 읽다가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해 졌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여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의 심리를 잘 묘사한 것 같거든요. 어느 부분 이었더라 세면대에 빠진 반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섬세한 여성의 심리 같은 것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요.
술을 마시면 참 별일이 많이 벌어지는 데 첫 에피소드가 재미있었어요. 와인을 흘리고 그 와인을 입고 들어간 남자 선배의 상황이 참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들더라고요, 작가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이 바둑을 두면서 의미 없는 끝말잇기 놀이는 술과 어우러진 재미있는 이야기였고, 책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일본 술과 다른 술들의 이야기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그에 어울리는 안주의 이야기는 술을 잘 못하는 저에게도 입맛을 다시게 하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술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연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 마지막에는 연애이야기로 넘어가서 예상을 적중한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았고, 제가 연애할 때의 생각도 떠오르네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투다리라는 꼬치 집에서 한 겨울에만 파는 따뜻한 정종으로 꼬임에 빠져들어서 지금의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데, 따뜻한 술은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몸에 빠르게 퍼져서 술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위험한 술이랍니다. 횡설 수설 하게 되는 이상한 술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야코 코사카이가 벌이는 수많은 술에 대한 무용담 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은 ‘술에 떡이 돼서’라는 대사인데요. 병원에 가서 주인공이 써놓은 상처의 원인이랍니다. 주인공의 성격이 아주 정확하게 표현된 대사가 아닌 가해요. 보통의 여자라면 의사의 말처럼 넘어져서 등의 다른 이유를 적었을 것 같은데요. 코사카이가 벌이는 술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웃음도 짓고 때로는 술로 숨기려는 감정도 찾아보고 그리고 그녀의 치밀한 연애담도 들을 수 있었고 여러 에피소드가 많아서 조금 산만한 것도 있지만 책 대부분을 미소 지으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읽다보니 책의 마지막장을 접하게 되네요. 즐거운 술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