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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다리 산책
이종근 지음 / 채륜서 / 2015년 10월
평점 :
고즈넉한 시골길에 놓여있는 다리를 생각해 봅니다. 이 강을 건너 이 개울을 건너 어쩌며 저 곳에 제가 기다리고 있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길 위에 아니 길의 끝에 끊어진 길 위에 그렇게 다리가 있어서 어쩌면 우리는 생각의 길을 걸어가는 데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나 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어떤 다리가 있을까?
책장을 넘기다 창녕 영산 만년교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개나리와 수양빛 사이에 놓인 다리와 물빛이 어우러져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다리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그저 사람의 손에 의해 불빛의 휘황찬란한 요란함 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다리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걸어갔을까요?
저자인 이종근님은 영도다리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 다리위에 남은 것이 기억이었는지 추억이었는지 말입니다. 다리 하나에 얽힌 이야기와 숨은 내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다 문득 소쇄원의 외나무다리를 건넌 기억을 해봅니다. 저에게는 그냥 넘어지지 않으려고 건너는 것에 집중하였던 다리에서 저자는 세속의 번잡함을 떨쳐내고 침입하지 않게 하는 다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리를 건너며 자신을 정제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학여행으로 가장 많이 가는 경주, 그 곳에 잊지 못할 다리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군것질도 하고 추억도 만들었지만 결국 그 다리에는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다리냐고요? 청운교와 백운교입니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람의 지나다님을 막고 있지만 제가 본 다리 중에 가장 화려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다리에 많은 의미가 있네요. 역시 다리의 의미를 가지고 즉 속세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의미 말이죠. 양쪽에 놓인 다리는 이름으로 인생을 말하나 봅니다. 청운교는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는 노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다리를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건너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며 아래 물빛을 보고 단상에 잠기기도 하지만 주된 목적은 다리에 없습니다. 그냥 주변에 있는 것이죠. 그렇게 의미 없어 보이던 다리가 하나의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연결하여주고, 때로는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월정교처럼 연인을 만들어 주는 고리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다만 그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기에 그렇게 두 발로 건너는 것에만 집중하였다는 것이죠.
세상의 많은 다리에 그렇게 많은 기억과 추억과 사연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글에서처럼 다른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의 순수 기능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가끔 그 고마움을 잊고 사연도 잊고 자신의 모습에만 담겨 있어도 슬퍼하지 않고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일상을 추억을 같이 담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다리를 건넜습니다. 차를 타고 건너며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가족이 있는 저 곳으로 연결하여 주는 다리, 오늘 문득 고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