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역사 -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
김학이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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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이 교수의 저서 <감정의 역사>는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독일사의 이면에 숨겨진 동력으로서 ‘감정’을 성찰한 연구서이다. ​지은이는 감정이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시대와 긴밀히 호응하며 변화해온 도덕적 기제이자 생산 요소라고 말한다. 16~18세기에는 종교와 결합해 도덕 공동체를 구축하는 핵심 기제로, 19세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노동을 ‘기쁨’으로 전환하며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자본으로 작동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감정이 화학과 의료의 영역에서 조절되는 현상과 기업의 생산 요소로 편입된 현실을 냉철하게 짚어낸다.

책은 루터의 문답부터 지멘스의 회고록, 나치 시대의 코믹 소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를 통해 독일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새롭게 해석한다. 결국 감정의 역사는 현재 우리의 감정이 시대적 산물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자아와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성찰의 도구’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오랫동안 문자와 유물, 경제 지표와 같은 소위 '객관적'이라 일컬어지는 사료들에 천착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은이가 시도한 '감정사(History of Emotions)' 연구는 인간의 내밀한 심층을 역사의 동인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일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감정이라는 극히 주관적이고 비정형적인 대상을 학문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노출된 방법론적 허점은 이 연구가 지닌 학문적 엄밀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특히 독일이라는 특정 국가의 특수한 궤적을 보편적 인류의 감정 변화인 양 상정한 지점과 파편적인 기록을 시대 정신으로 치환한 대목은 냉철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지은이가 활용한 사료의 선택과 해석 방식에 내재한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루터의 <소교리문답>이나 특정 시기의 소설, 혹은 기업가의 회고록은 분명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기록된 감정은 본질적으로 ‘선택된 감정’이자 ‘정제된 담론’이다. 문자로 남겨질 수 있었던 계층의 감정이 과연 당대 민중 전체의 보편적 정서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특정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나 권력자의 전략적 수사가 담긴 사료를 근거로 한 시대를 '공포'나 '열광'이라는 단일한 형용사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학이 경계해야 할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동일한 사건 앞에서도 계급, 성별, 지역에 따라 다층적으로 나타난다. 지은이의 방법론은 파편적인 사료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여 역사의 복잡성을 단순화한 결과, 실체 없는 ‘시대적 감정’이라는 허상을 구축한 셈이다.

​또한, 독일 역사의 흐름을 감정의 진화 단계로 설명하며 이를 인류사의 보편적 도식처럼 제시한 점은 지극히 서구 중심적이며 독일 예외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나치즘이라는 극단적인 광기와 전후의 집단적 우울은 독일 사회가 겪은 특수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이를 자본주의 정당화 기제나 도덕 공동체 수립의 일반적 과정으로 포장하는 것은 다른 문화권이 겪은 고유한 감정의 역사를 소거하는 행위이다. 물론, ​독일의 사례가 감정사 연구의 흥미로운 모델이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인류 감정 진화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저자는 독일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틀에 세상을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역사학의 기능인 '현재의 상대화'를 넘어, 특정 지역의 경험을 절대화하는 학문적 기만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역사는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연구 분야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방향성은 저자가 보여준 주관적 해석의 나열이 아닌, 보다 입증 가능하고 체계적인 방법론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몇가지 고언을 첨부해 본다.

​첫째, '담론으로서의 감정'과 '실제로서의 감정'을 분리하여 분석해야 한다. 문학 작품이나 통치 문건에 나타난 감정은 시대가 요구한 '감정의 규범'이지 실제 구성원들이 느낀 감정의 총체는 아니다. 따라서 일기, 편지, 재판 기록 등 비공식적 사료를 대량으로 분석하여 공식 담론과의 괴리를 추적하는 다각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둘째, 감정의 물질적·신체적 기반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저자가 언급한 약물과 화학적 통제는 현대 감정사의 중요한 지점이지만 과거의 감정 역시 먹거리, 주거 환경, 신체적 고통 등 물질적 조건과 떼어놓을 수 없다. 감정을 관념적인 도덕의 영역에서 해방시켜 인간의 생존 조건과 결부된 생생한 반응으로 읽어낼 때, 감정사는 비과학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비교사적 관점의 도입이 시급하다. 독일의 감정이 특수한 것이라면, 같은 시기 동양이나 아프리카 등 여타 지역의 감정은 어떻게 작동했는지 비교함으로써 '감정의 지역성'과 '인류 공통의 정서'를 구분해내야 한다.

​역사학이 성찰의 학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성찰은 주관적 확신이 아닌, 엄밀한 사료 비판과 객관적 거리 두기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감정은 시대를 움직이는 동력이지만, 동시에 권력에 의해 기획되고 자본에 의해 가공되는 가변적인 대상이다. ​진정한 감정사의 역할은 '과거에 이런 감정이 있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그러한 감정이 권장되고 기록되었는가'를 파헤치는 역학적 조사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혐오와 분노가 작렬하는 21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를 '감정의 감옥'이 아닌 '성찰의 무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역사는 답을 주는 현자의 돌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편향성을 비추는 차가운 거울이어야 마땅하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결코,나처럼 이런 표지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포스팅해 본다. ☆☆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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