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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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상평과 느낀점
첫 장을 읽는 순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스릴러물도 아니고 액션물도 아닌데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제껏 페미니즘 관련된 책들은 이 책에 비하면 도덕 교과서처럼 순한 내용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호칭에 관련된 투쟁기이다. 여자는 시가에서 도련님, 아주버님을 부르지만 남자는 제수씨, 처남댁이라고 부르는 것에 저자는 의문을 품었고 개선하고자 하였으나 실패였다. 실패는 시가도 아닌 저자 형님의 거부로 호칭 문제는 결렬되었다. 여자간의 연대를 맺는 것이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형제 싸움이 되었고 시부모님과도 예전만큼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우습지만, 남편은 저자의 뜻을 지지한다.

시집에서 형님이 첫 장을 읽는 순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스릴러물도 아니고 액션물도 아닌데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제껏 페미니즘 관련된 책들은 이 책에 비하면 도덕 교과서처럼 순하다.

이 책의 내용은 호칭에 관련된 투쟁기이다. 여자는 시가에서 도련님, 아주버님을 부르지만 남자는 제수씨, 처남댁이라고 부르는 것에 저자는 의문을 품었고 개선하고자 하였으나 실패였다. 실패는 시가도 아닌 저자 형님의 거부로 호칭 문제는 결렬되었다. 이로 인해 형제 싸움이 되었고 시부모님과도 예전만큼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우습지만, 남편은 저자의 뜻을 지지한다.

시집에서 형님이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동서~~~~요?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님은 형님에게 윗사람이 무슨 존대야? 하며 나무라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존칭어를 요구한 것도 아닌데 화끈거리는 동시에 나와 형님은 동갑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형님은 반말, 나는 높임말을 쓴다. 동등한 위치가 아닌 수직관계가 되어버렸다. 일 년에 서너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인지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저자는 형님, 아주버님 대신 재현이, 수진이라 부르고 시부모님을 두현이 부모님이라고 부른다. 어색하면서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남편에게 이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해주었다. 남편왈 아무리 옳은 의견이라도 저자는 싸움의 기술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싸움에서 이길려면 무조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가정 내 분란을 일으키면서 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하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인식하고 실천하자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저자처럼 실천할 수 있을까?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 할 것 같다.

저자가 시가의 분위기라면 동서의 위치가 아닌 형님의 위치에서 호칭의 변화를 제안했더라면 받아들여 졌을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내가 형님의 위치였다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빴을 것 같다. 결국, 여자 대 여자는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로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만든 건 사회구조이다.

나는 비록 이 저자처럼 실천할 자신은 없다. 생각할 거리가 많이 던져 준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어졌다.

2.마음에 남는 글귀
8쪽
'아주버님-제수씨', '도련님-형수님', '아가씨-올케', '형님-동서' 등 가족 간에 통용되는 호칭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내가 서열이라는 관습에 저항하는 이유는, 이것이 가족의 본래 목적인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서열 구조는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고, 이는 곧 가족 내 약자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진다.

27쪽
'형님'과 '동서'라는 호칭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왜 형이나 동생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이가 같은 두 여자 사이에서 호칭의 차등이 생기는 길까? 여자들이 온전한 개인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29쪽
남자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위계를 정하는 관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에 내가 두현의 부모님을 '어머님'과 '아버님'이라고 부를 때 장유유서의 관습만을 의식했다면, '아주버님-제수씨'와 '형님-동서' 호칭에서 느낀 것은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했다는 감정이었다. 시가 모임에서 오직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향도, 남편의 나이를 기준으로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정해지는 부계 중심적인 질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70쪽
자신은 유빈이를 당연히 박씨 집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 성이 다르면 유빈이가 나중에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음. 어차피 우리 아이 성은 형이 간섭할 일은 아니지.
그건 그렇고 정말 유빈이를 박씨 집안 사람이라고 생각했구나. 배우자가 들으면 섭섭하겠다."

116쪽
재현이 왜 이 가족 집단에서 여자들이 더 존중받는다고 생각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당장 자신부터 동생의 배우자인 나를 '원래 낮은 위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설마 이 가족 집단의 여자들이 제사상을 차리거나 명절 음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보다 더 존중받는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생각 때문에 나를 ‘자유롭게 뒸다’고 은혜를 베푼 것처럼 말했던 걸까?

117쪽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차별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그것이 남자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여자에게는 ‘우대’라는 생각, 그 때문에 가족 호칭이나 자녀의 성씨 등의 문제에서 여자가 남자와 똑같은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지금 자신이 누려왔던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요즘 세상/한국/우리 집에선 남자보다 여자가 더 존중받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중략)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는데 어째서 그 이상을 요구하느냐는 억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처럼 시가 구성원들이 나에게 일을 시킬 권리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 어떤 노동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그 집단에서 차별받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152쪽
"당신은 가족들을 모두 '님'이라고 부르는데, 어째서 당신이 님이라고 불리고 싶다는 건 무례한 일이 되는 걸까?"

161쪽
제수씨'와 '아주버님만 해도 왜 나는 '씨'이고 당신은 님인가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댁'이라니…. 게다가 ’처남댁'이라는 호칭은 그야말로 한 여자를 남편의 집에 속한 조치로만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168쪽
개인적인 영역에서 보면 나는 수진과 재현의 호칭을 부르지 않을 수도 있고, 두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사회가 한쪽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268쪽
나는 약자의 침묵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구성원들이 부딪치고 갈등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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