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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전문가의 면모가 드러난 서울문화유산이야기
주상태
서울을 다녀 본 사람은 안다. 서울이란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이라는 것을. 그런 시간이 5년 남짓 흘렀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많고 차가 많고 등등 여러 가지 아쉬움이 많았다. 그런데 매력을 느낀 것은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서울을 걷다보면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그럴수록 걸음은 빨라진다. 한양도성을 10번 이상 걸었고 서울둘레길은 같은 길 다른 길을 걷고 또 걷고 있다. 그 길 속에 우리나라 근대역사가 있고 조선시대가 있었다. 그 속에 빠져들면서 공부에 가속도를 붙일 계기가 된 것이 조선왕조다. 조선왕릉을 가도 조선왕조를 알아야 했고, 조선궁궐을 둘러볼 때도 조선왕조를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만족스럽지 못했다. 원래 책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보면 볼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힘들었다. 책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한 권의 책이 한 권의 사람인 것처럼 여러 책을 만나야 했다. 사실 불만족스러웠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이 나온 것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들을 넘어선 무엇인가 있었다. 그 중 창덕궁만으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창덕궁을 거금 8,000원을 주고 다녀왔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기에 그 돈이 아깝지 않아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는 현장에선 그렇지 못했다. 정말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궁궐지킴이를 이해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냥 상식수준 정도로 산책하듯이 다녀온 아쉬움이다. 그래서 자유관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준 것이 이 책이다.
창덕궁을 들어가기 전 월대이야기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도로보다 낮은 월대를 보고 함께 갔던 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월대의 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옮겨본다.
“이 월대는 건물에 말할 수 없는 품위와 권위를 부여해준다. 월대가 있고 없고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궁궐의 대문이지만 창경궁의 홍화문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도 월대가 아주 좁아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건물에 월대가 없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영화제에 레드카펫이 없는 것과 같다. 임금과 왕비의 공간인 창덕궁 대조전 건물 앞의 월대를 보면 월대라는 공간의 뜻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월대의 크기는 건물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다른데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는 길이 18미터, 폭 25미터, 높이 1미터로 제법 크고, 옆면이 잘 다음어진 장대석으로 둘려 있어 번듯하다. 오늘날 월대로 오르는 돌계단이 도로변에 거의 맞닿아 있어서 광화문처럼 멀찍이서 간신히 올려다봐야 한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1995년에 복원된 것으로,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월대가 땅에 묻혀 있어 돈화문 돌계단 앞까지 아스팔트가 이어져 있었다.“
지난 주 창덕궁을 답사한 샘들은 돈화문 방향에서 또 반대방향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월대의 처지를 확인했었다.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랬는지 궁금했지만 어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사연은 이 책에 나온다.
“돈화문 앞 월대가 땅에 묻히게 된 것은 1907년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새로 마련한 캐딜락 자동차가 내전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월대를 흙으로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그후 1932년 일제가 창덕궁과 종묘 사이를 가로질러 원남동으로 넘어가는 길을 돈화문 앞으로 내면서 광장으로서 월대의 옛 모습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월대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본래 돈화문 앞 월대는 광장의 무대이기도 했다. 유시 또는 윤음의 형태로 대국민성명을 공표할 때면 주무 대신이 월대에서 낭독했다. 과거시험 합격자의 방이 여기에 걸렸고, 중국 사신을 위한 축하 공연으로 산대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기근이 심할 때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는 행사도 월대에서 했다. 이처럼 월대는 공식적인 행사의 장이었고 왕과 신하가 백성들과 소통하는 마당이었다.”
이처럼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가기 전부터 이야기가 풍성해지면서 책읽는 즐거움에 대한 기대는 높았고 실제 창덕궁 정전, 편전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깊어졌다. 특히 저자가 문화재청장으로 있으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과정에서의 창덕궁 관련 이야기와 일반인은 볼 수 없는 궁궐 안 벽화이야기는 새로웠다.
이 책은 단순히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 역사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창덕궁은 경복궁과 달리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알아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여러 군데에서 보여진다. 본문에서 보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나무들이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느낌을 주고 인공적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꾸미긴 꾸몄는데 꾸민 태를 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창덕궁에서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긴다고’ 말하고 있다. 창덕궁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무엇을 보아야 할지를 강조하는 것 같다.
한편 이 책의 표지 한 구절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에 대하여 말할 때는 저자의 마음까지 가슴에 와 닿았다. 존덕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답고 당당하고 기품있는 정자에 숙종, 영조, 정조, 순종까지 많은 임금이 와서 이곳에 시와 문장을 남겼지만 저자는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라는 장문의 글이 이 정자의 역사적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구절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내고 있다. 정조는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맑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이 만천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 글을 읽다보면 ‘인간의 심성을 그처럼 섬세하게 읽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무섭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그런 뜻은 이해하나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다.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창덕궁을 가보고 싶어졌다. 내가 보지 못한 창덕궁을 다시 만나고 싶어진 것이다. 그 후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