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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최유안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평점 :
전문직 직장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작소설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현실적인 소설을 접해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다.
총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첫 번째 주인공 <여은경>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설총장의 권유로 한국 교수 공채에 지원서를 내고 합격한 후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곳에서 한국 대학의 관료주의적 현실을 마주한다.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원생인 '황예은'은 그들의 미래를 쥐고 있는 대학 교수들에게 불만을 품고 이를 바로잡고자 여은경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왜 하필 여은경 교수였을까?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민 끝에 여은경은 조금 더 나은 대학 문화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 먹는다.
두 번째 주인공 <최민선>은 문화예술 행정기관에서 근무 중인 회사원이다. 9년 차 책임이던 민선은 더할 나위 없는 평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저 시키는 일 잘하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애매한 나이에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겼다. 그러다 신임 원장인 '성해윤'을 만나게 된다. 그녀가 민선에게 새로 만든 TF팀의 팀장 자리를 제안한다.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민선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주어진 업무를 임했고, 머지 않아 30대 후반의 나이에 센터장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입사 동기인 '김은해'가 갑자기 친한 척 다가와 성해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부터 그녀에 대한 충성심에 변화가 생긴다. 직장생활의 매우 현실적인 민낯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마음 한 편이 불편하면서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가장 몰입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세 번째 주인공 <표초희>는 비엔날레 예술 감독이다. 대기업 연구원인 남자친구 윤재와 파혼하고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막 마흔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순수한 사랑을 꿈꾼다. 재단의 인턴으로 들어온 스물 여덟살의 민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초희의 대학 동기이자 부감독, 그리고 워킹맘인 재연은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보고도 그저 직장 선후배로 바라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전혀 둘 사이를 의심하지 않는 듯하다. 재연의 시선은 어쩌면 매우 현실적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나의 어휘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해본 예쁜 순 우리말이 꽤 있었다. 평소 잘 쓰지 않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인상 깊었다. 에필로그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 세 사람은 비엔날레 전시장 '겨든당'에서 한 공간에 자리한다. 겨든당은 위안을 주는 빛이 고여 서로 겯어주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겯다>란 풀어지지 않도록 서로 잡아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이 이곳에서 잠시나마 위로받고 서로를 응원하고자 하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직장인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현실적인 소설이어서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