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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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가제본 서평 이벤트가 열려 신청했더니 운이 좋게도 당첨되어 읽게 된 소설, <노 본스>


개인적으로 전쟁소설이나 영화를 그렇게 많이 읽거나 본 편은 아니다.

가제본이라 내용의 절반 정도만 수록되어 있고, 또 이 소설의 작가의 전작(발간은 노 본스보다 오래됐지만 실질적으로 노 본스가 이 작가의 데뷔작이다)을 읽어본 적이 없어 소설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가제본과 함께 동봉되어 온 편집자의 편지를 읽고 다행히 소설의 배경에 대해 간략히 알 수 있었다. (1969년 영국군이 처음 북아일랜드에 왔을 때부터 1994년 정전 선언 때까지, 벨파스트 안의 아도인이라는 작은 지역 공동체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유쾌하진 않았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유쾌하게 읽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통 전쟁이라는 소재에서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시선을 보면 승리와 패배가 있고, 동료애가 있다거나 적으로부터 나와 우리를 지키는 그런 영웅적인 이야기가 그나마 익숙한 정도인데,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시선은 내가 여태 접했던 시선과 사뭇 달랐고, 개인적으로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가 내게는 감정적으로 불편하게 다가왔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다르게 덤덤하고 건조하고 써 내려가는 작가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니 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이 마치 내 눈앞에서 펼쳐진 풍경처럼 잔상에 남을까 무서웠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이어지지만 개인적으로 특히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주인공 어밀리아가 겪는 사건들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는 선생님, 그런 와중에 "평화"에 대한 시를 쓰라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어린 어밀리아가 당한 폭행과 대조적으로 다가와 더욱 끔찍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밀리아가 겪게 될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게 제일 끔찍했다. 이제 시작이라니.......

친오빠 믹으로부터 겪는 사건들도 참 괴로웠다. 어린 어밀리아가 애지중지 모았던 고무탄(어린아이가 보물 찾기처럼 가장 열심히 모으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게 고무탄이라는 것조차 놀라웠다.)을 눈뜨고 버젓이 빼앗겨 버린 억울함, 소중한 것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무력감과 좌절을 겪는 어밀리아는 가족 안에서의 폭력뿐만 아니라 학생 사이에서의 폭력 등 다양한 비극에 노출되어 심신이 망가져 가는 과정을 점점 더 강도 높은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 가장 분량도 많았지만 가장 읽기 힘들었던 부분이 어밀리아의 이야기였다.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그래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회복의 가능성이 비친다고 하니 본편을 읽으면 이 불편하고 먹먹한 감정들이 해소될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에서 "약자"와 "강자"를 나누는 것부터 모호하게 느껴지지만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면 비로소 가려져있던 "약자"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는 바로 아이들과 여성들, 병자들, 성적 소수자들, 그리고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나약하다 손가락질 받는 남성들이다. 일상에서도 요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편을 갈라 배척하고 증오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일이 꽤 빈번해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시대적 배경으로 들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총과 칼을 들지 않았을 뿐 말과 글로 온갖 다양한 논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일이라 여겼던 것들이 규모가 커지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때 우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이 비극을 강자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 비극의 무게는 오롯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몫이 된다. 노 본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무게를 짊어지는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슴 아프고 무거운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툭툭 던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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