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부질없는 생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부질없는 생이기에 우리는 평생 욕망으로 몸부림친다.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는데도 삶을 그런 식으로 소진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저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을 권한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며.
삶이 곧 죽음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죽어 있다면 여생은 그저 덤이다.
그래도 힘들 땐 문을 닫아걸고 죽음을 생각한다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라면서
일본의 사카노 우에노 고레노리의 노래를 들려주는 저자
단풍잎이 떨어져 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타츠타 강물의 가을을
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첫번째 주제이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제적 죽음이 온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라고 말한다.
섬뜩한 진단이다.
그 섬뜩하고 잔인한 연옥 상태를 나는 우려한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힘을 잃어가는데 육체적인 숨은 한없이 길어지는 순간들.
그리고 더 잔인한 것은 그 연옥 상태마저도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스며들면 어쩌나 그 또한 걱정스럽다.
새해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이건 무슨 말일까 궁금해지는 문장이다.
새해 보신각 종이 울리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8(이제 2019이겠다)이라는 숫자가 적힌 '빤쓰'를 입고 다시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아가야 하는 존재들.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며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복서 중 한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참 기발한 인용이 아닌가?
사람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각오를 하는 것처럼 새해 행복해지겠다는 계획같은 건 없다.
행복한 계획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절망과 포기. 또 그렇게 흘러가는 늘 그렇고 그런 삶이라는 잔인한 현실을 타이슨의 강한 펀치를 통해 한방에 전해지게 만드는 촌철살인!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를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건넨다.
날이 어두워져 사물과 분간할 수 없는 때, 그래서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물체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때, 그래서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물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이다.
마치 영화의 대화처럼 이런 대화를 건넨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연말연시에는 시간이라는 흙탕물에 서 있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시간이라는 흙탕물을 대할 때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 마음에 대입하면서 정리도 해본다
다음 구절을 적어본다. 진지하게 생각하다 이런 발칙한 문장이라니...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을 추구하는 존재의 모순을 껴안고 받아들이는 순간
하필 그때 애인이 전화를 해서 묻는다.
나이를 먹고 살이 쪄서 돼지가 되어서 당신은 날 사랑할꺼냐 묻는 애인에게
온화하게
"아니 그땐 돼지를 사랑할거야. 당신은 사라지고 돼지만 남아 있을 테니."
시간이라는 흙탕물에 서 있는 나
진지하게 내 삶을 단계별로 오롯이 밟아나가는 찰나 마지막 구절에서 빵 터지고 만다.
이렇게 재기넘치는 문장을 곳곳에 숨겨놓는다.
*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장한다는 것은 주변과 자신의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다.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 밖에 없다.
익숙한 곳을 떠났기에 낯선 것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 모든 낯선 것들은 여행자에게 크고 작은 흔적 혹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우리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 혹은 적어도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이제 세상을 알 만하다고 느낄 무렵 예상치못한 순간에 부고를 듣게 된다.
무관심할 수 없는 어떤 이의 부고.
그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삶 뿐만 아니라 삶 이후의 세계까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확장된 시야에는 심미적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인간의 유한성을 알아가면서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음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라는 것이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참 멋진 문장이다.
익숙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표현하는 문장도, 담아내는 그릇도 새롭고 산뜻하다.
고루하지 않으면서 가볍지 않고
본질을 확 잡아내는 통찰이 문장에서 보인다.
설거지를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집안에서의 설거지가 삶의 과정으로의 설거지로 이어진다.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엄청난 설거지
인간론으로 이어져
인간 자체가 설거지거리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풀탕왕의 목욕통(세수대야)에 새겨진 '일신우일신'의 의미를 스스로 설거지에 게을러지지 말라는 뜻으로 풀어내는 저자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추석에 대한 이야기들은 유연하면서도 유머 깃든 문장 속에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2018년에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매우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5년 추석을 즐기는 법
2016년 무심론자의 추석
2018년 추석이란 무엇인가
수능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