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깨버리는 제목이 아닌가

누구나 아침엔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건네는 것이 우리의 통념인데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라니...

 

결혼, 추석, 선거, 인권, 정치 등 다양한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고 다른 사람과는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시각에

아~ 이렇게 생각하고 접근하는구나 내 틀에 박힌 머리에 주먹 한방 맞은 듯 하고, 꼰대스럽지 않은 유연한 서술이 읽으면서도 즐겁다.

동양사상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선입견이 보기 좋게 무너지는 문장들이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지 않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시각이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찾아가는 저자의 질문과 논리적인 전개가 깊이를 더하니 좋지 아니한가~

책을 읽으면서도 기억해야 할 내용을 표시하다보니 이렇게 많이 포스트잇이 붙었다.

이 블로그가 배움을 기록하는 공간이기에 더 많은 내용을 정리하고 좋은 구절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지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너무 많은 내용을 기록하는 것도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고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면 그 또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자세한 내용을 생략할 수 밖에 없었다.

보관하고 싶고 다시 하번 복기해야 할 내용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여 파일로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책이었다.

 

이토록 부질없는 생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부질없는 생이기에 우리는 평생 욕망으로 몸부림친다.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는데도 삶을 그런 식으로 소진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저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을 권한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며.

삶이 곧 죽음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죽어 있다면 여생은 그저 덤이다.

그래도 힘들 땐 문을 닫아걸고 죽음을 생각한다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라면서

일본의 사카노 우에노 고레노리의 노래를 들려주는 저자

단풍잎이 떨어져 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타츠타 강물의 가을을

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첫번째 주제이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제적 죽음이 온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라고 말한다.

섬뜩한 진단이다.

그 섬뜩하고 잔인한 연옥 상태를 나는 우려한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힘을 잃어가는데 육체적인 숨은 한없이 길어지는 순간들.

그리고 더 잔인한 것은 그 연옥 상태마저도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스며들면 어쩌나 그 또한 걱정스럽다.

새해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이건 무슨 말일까 궁금해지는 문장이다.

새해 보신각 종이 울리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8(이제 2019이겠다)이라는 숫자가 적힌 '빤쓰'를 입고 다시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아가야 하는 존재들.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며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복서 중 한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참 기발한 인용이 아닌가?

사람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각오를 하는 것처럼 새해 행복해지겠다는 계획같은 건 없다.

행복한 계획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절망과 포기. 또 그렇게 흘러가는 늘 그렇고 그런 삶이라는 잔인한 현실을 타이슨의 강한 펀치를 통해 한방에 전해지게 만드는 촌철살인!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를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건넨다.

날이 어두워져 사물과 분간할 수 없는 때, 그래서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물체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때, 그래서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물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이다.

마치 영화의 대화처럼 이런 대화를 건넨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연말연시에는 시간이라는 흙탕물에 서 있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시간이라는 흙탕물을 대할 때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 마음에 대입하면서 정리도 해본다

다음 구절을 적어본다. 진지하게 생각하다 이런 발칙한 문장이라니...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을 추구하는 존재의 모순을 껴안고 받아들이는 순간

하필 그때 애인이 전화를 해서 묻는다.

나이를 먹고 살이 쪄서 돼지가 되어서 당신은 날 사랑할꺼냐 묻는 애인에게

온화하게

"아니 그땐 돼지를 사랑할거야. 당신은 사라지고 돼지만 남아 있을 테니."

시간이라는 흙탕물에 서 있는 나

진지하게 내 삶을 단계별로 오롯이 밟아나가는 찰나 마지막 구절에서 빵 터지고 만다.

이렇게 재기넘치는 문장을 곳곳에 숨겨놓는다.

*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장한다는 것은 주변과 자신의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다.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 밖에 없다.

익숙한 곳을 떠났기에 낯선 것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 모든 낯선 것들은 여행자에게 크고 작은 흔적 혹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우리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 혹은 적어도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이제 세상을 알 만하다고 느낄 무렵 예상치못한 순간에 부고를 듣게 된다.

무관심할 수 없는 어떤 이의 부고.

그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삶 뿐만 아니라 삶 이후의 세계까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확장된 시야에는 심미적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인간의 유한성을 알아가면서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음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라는 것이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참 멋진 문장이다.

익숙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표현하는 문장도, 담아내는 그릇도 새롭고 산뜻하다.

고루하지 않으면서 가볍지 않고

본질을 확 잡아내는 통찰이 문장에서 보인다.

설거지를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집안에서의 설거지가 삶의 과정으로의 설거지로 이어진다.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엄청난 설거지

인간론으로 이어져

인간 자체가 설거지거리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풀탕왕의 목욕통(세수대야)에 새겨진 '일신우일신'의 의미를 스스로 설거지에 게을러지지 말라는 뜻으로 풀어내는 저자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추석에 대한 이야기들은 유연하면서도 유머 깃든 문장 속에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2018년에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매우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5년 추석을 즐기는 법

2016년 무심론자의 추석

2018년 추석이란 무엇인가

 

수능 이후

추운 겨울 어김없이 다가오는 수능에 크리스마스가 즐겁지 않다는 저자

대입이 끝난 뒤에 무익한 시간의 독을 씻기 위해 강원도 여행을 다녔던 저자의 경험을 정리하며 그 입시를 위해 보내야했던 그 지루했던 시간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환한 앎에서 얻어야 함을 말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공부가 있음을 영원히 모른 채로 죽지 않기 위해서

신입생을 위한 무협지 편에서는 유쾌함 속 신랄한 풍자가 담겨있는 글이다.

대학과 대학 교수들의 다양한 군상을 다룬 글이어서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발칙한 내부 반성이 실려있다.

대학이라는 무림에서 어떤 성취와 희열도 짧기 마련이니 지나친 허무감을 경계하며 깨어있을 것을.

사람들은 가끔 내심 결정을 내려놓고서 상대의 인정을 얻기 위해 의견을 구할 때가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결혼 상대를 구할 때, 학과를 구할 때 등등 여러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은 삶들

우리 사회에 고민많은 청춘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이 담겨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유를 주제로 글쓰기를 한 이야기에서 또 한번 웃음이 머문다.

적폐란 무엇인가

대학 시절 시험 감독 아르바이트 정보를 받아 자격증 시험 감독을 하러 간 경험을 말한다.

그런데 종이 울리기 무섭게 수험생들이 너나없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부정행위를 하더란다. 고민을 하다 남의 답안을 보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부정행위를 단속했단다. 그랬더니 시험 감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저자가 부정행위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

답안지를 걷어 나오는 뒤통수에 수험생들이 질러대는 소리들이 늑대들의 하울링처럼 울려퍼졌다고 그 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적확하게 표현한다.

시험 감독을 마치고 터덜 터덜 걸어 내려오다 본 하늘의 구름이 더이상 솜사탕이 아닌 신이 흘린 게거품처럼 보였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내용의 진지함에 앞서 이런 표현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궁금해진다.

그동안 용인되어온 숱한 관행들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다.

그러면서 적폐청산을 목표로 하는 정권이 등장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시험감독 현장에서 관행이라는 이유로 부정행위를 그토록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하는 그들을 떠올리며 저항하는 무리를 떠올려서일게다.

그들은 그동안 누렸던 권리가 박탈당할까 온갖 비루하고 비열한 행동을 할 것이기에...

길고도 험한 싸움이 되겠지

배움의 전당이면서 가장 민주적인 협의체가 되어야 할 대학의 다양한 손익계산에 휘둘리고 합리적인 숙의 과정이 되지 못한 내부자의 비판적 시각도 매우 인상적이다.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는 글은 날카로운 우리 사회의 비판이면서 일상화된 힘의 논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 수업에서는 나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상상을 담아본다.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면서 젊은날에 두려워하던 고독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삶을 이야기한다.

앞뒤가 맞지 않은 서술로 점철된 국정화교과서를 보며 잘못된 서술로 점철된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신랄하면서도 재치있게 풀어놓는 저자의 문장과 표현에 감탄이 나온다.

-모순을 판별하는 능력이 없으므로 아무말이나 하는 사람

-모순을 잘 참는 정신적인 굳은살이 박혀 불의와 모순을 잘 참고 그 굳은 살로 더 큰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

-아니면 각종 불의와 헛소리에 알레르지 같은 지병이 생겨 상시적 분노상태에 높이는 사람. 그들은 그저 옷깃을 여미고 오늘도 춥고 비열한 거리를 걷는다는 말로 끝낸다.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을 보며 후보가 더 나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을 말한다. 동의하며 읽다 마지막에 또 빵터짐.

그러면서 동문서답으로 일관할 때 정말 이렇게 한번 해주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사회자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질문 "식사하셨습니까?"

먹고 왔다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비를 이렇게 하고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던가요?

이때 당황하며 울먹이는 후보는 삼류, 부끄러워 사퇴하는 후보는 이류, 밥값을 못했으니 반성하는 차원에서 토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시작하는 후보 그가 바로 일류다.

어떤 자유와 존엄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는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하지만(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참사는 오래 지속된다편에서는 너무 빨리 잊고 사는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상처를 죽음을 국가 폭력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사회는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기에.

자꾸 잊으려는 세월호의 참사 앞에서 분향소에 적힌 엄마의 편지를 펼쳐보인다.

엄마는 이미 지옥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서 한 엄마가 딸에게 적어놓은 편지

넌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러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모사고 빨리 낳았다.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푼 더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글에도 리듬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다.

재미없는 글을 좋아하지 않기에 글의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맛없는 디저트를 먹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는 저자는 재미있는 글을 맛있는 디저트에 비유한다.

문장 속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담겨 있지만 무겁거나 어렵지 않다.

허를 찌르는 예상 외의 질문과 기발한 문제 제기를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표현하거나 다양한 책 속의 이야기를 들어 섬세하게 연출해낸다.

그래서 딱딱하거나 엄숙하지 않으면서도 삶과 죽음, 우리 사회와 대학의 도려내야할 단면들을 드러낸다.

지루할 틈이 없고 그 참신한 발상과 표현에 웃는 일도 많다.

톡톡 자극을 주는 맛있는 디저트 역할을 하지만 날카롭고 무거운 펀치를 동시에 날려준다.

가만히 글을 읽다보면 다양한 책들과 영화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맛있는 디저트같은 문장 속에 진지한 성찰이 갈려있다.

글의 힘이 강한 것이다.

인터뷰 내용이나 글 속에 책을 아주 많이 읽었음을 알 수 있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좋은 책을 많이 권유해주었다고 써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는 안하고 매주 책 한권씩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린 시절부터 책과 친숙한 삶이 문학적인 감수성을 담아내고 이렇게 재기넘치는 문장을 써낼 수 있는 원동력이구나.

물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질문과 성찰, 많은 습작을 거쳐 단련되고 풍성해진 결과겠지.

학급에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으라고 책을 많이 놓았었다.

내가 읽고 좋은 책

추천하는 책 등을 사서 학급에 놓았었다.

1년 동안 그 책들을 활용하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심심하면 책을 펼쳐보는 아이가 몇 있었다.

그 중에 한명쯤은 이렇게 자신이 삶을 담은 글을 쓰는 친구가 있겠지 위안 삼으며 올해 좋은 책을 놓아두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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