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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bliners (Paperback) - Penguin Twentieth-Century Classics
Penguin Classics / 1993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블린의 거미줄에 걸린 인물
이 작품에서 가장 존재감이 강한 인물은 Mrs Mooney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소설 첫 문장의 주어 자리부터 Mrs Mooney가 차지하고 있고, 서술 분량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46쪽의 2/3 정도에서 그녀가 하숙집을 차리게 된 배경이 나오며, 47쪽부터 48쪽 중간까지는 그녀가 자신의 딸 Polly가 누군가와 관계가 진전되어 잠자리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부분이다, 48쪽부터 49쪽 중간까지는 Mrs Mooney가 도란과 만나면 어떻게 공방을 벌일지 생각하는 부분이다. 6쪽 반짜리 소설에서 Mrs Mooney만을 서술하는 데 3쪽 넘게 소모된 것이다. 폴리가 등장하는 부분이 약 2쪽(47, 48, 50, 51, 52의 일부), 도란을 다루는 부분이 약 2쪽 반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녀의 존재가 더욱 도드라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Mrs Mooney가 보이는 특성에 있다. 소설 전반부에서 Mrs Mooney는 “She governed her house cunningly and firmly, knew when to give credit, when to be stern and when to let things pass.”라는 말로 표현된다. 즉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솜씨를 이용하여 Mrs Mooney는 자신의 ‘intention’에 맞게 Doran이 움직이도록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먼저 폴리를 타이피스트로 보냈다가 하숙집 일을 돕게 한다. 이는 “the intention was to give her the run of the young men”에서 알 수 있듯, 딸이 괜찮은 신랑감을 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다 딸이 건실한 남자와 잘될 기미가 보이자 결혼을 요구해도 될 때까지 기다렸다 개입한다. 사실상 소설 전체에 Mrs Mooney의 손길이 뻗어 있는 셈이다.
이때 내용이 제시되는 순서는 Mrs Mooney가 보이는 조작자(manipulator)의 면모를 더욱 강화한다. Mrs Mooney는 Doran과 담판을 짓기 전 머릿속으로 자신의 패를 점검하고 승리를 확신한다. Doran의 생각은 그 다음에야 제시되는데, 이는 Mrs Mooney가 예상했던 것과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그녀는 “he had been employed for thirteen years in a great Catholic wine-merchant’s office and publicity would mean for him.”라며, 가톨릭계 포도주 상점에 다니는 사람이 결혼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에 Doran은 Mrs Mooney가 예상한 대로 “The affair would be sure to be talked of and his employer would be certain to hear of it.”라며 폴리와 저지른 ‘그 일(the affair)’이 직장 생활에 불러올 파장을 생각한다. 이처럼 Mrs Mooney→Doran 순으로 내용을 배치하면 그 반대 순서일 때보다 Mrs Mooney가 예측한 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는 점이 부각된다. 즉 Doran이 Mrs Mooney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The Boarding House”에서 “The Prophet’s Hair”와 달리 조작자가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The Boarding House”의 인물들이 고정된 체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 교리는 하숙집 사람들의 가치체계를 지배한다. 예를 들어 Doran은 ‘그 일’에 대해 고해를 한 후 신부의 반응을 기초로 죄의 무게를 가늠한다. Mrs Mooney도 남편에게서 위협을 받자 “신부한테 가서” 이혼이 아닌 “별거 허락을” 받아낸다. 즉 가톨릭을 대변하는 ‘priest’에 기대어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 후 적절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동시에, 가톨릭적인 가치관은 인물이 타인의 시선 아래에 놓이면서 더욱 강화된다. “Dublin is such a small city: everyone knows everyone else’s business.”에서 알 수 있듯, 하숙집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인물은 더블린, 더 좁게는 하숙집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생활하며 타인에게 감시당한다. 그리고 주변인의 가치체계에 따라, 즉 가톨릭의 기준에 근거하여 평가받으며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따라서 “The Boarding House”에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 가늠할 수 있다. 사회 전체에 깔린 고정된 규범과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이 인물에게 압력을 가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누군가를 규범에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면 금기 위반을 빌미로 그를 구속할 수 있다. Mrs Mooney가 도란을 둘러싼 규율을 파악하고 그가 폴리와 ‘그 일’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린 후, 결혼 외의 출구를 봉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에서 “The Prophet’s Hair”는 “The Boarding House”와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자에서는 하나의 지배적인 가치체계가 공간 전체를 속박하지도, 이로 인해 인물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특정 범위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우선 “The Prophet’s Hair”에서는 가치관이 여럿 등장한다. 돈을 좇아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인물도, 채무자까지도 예의바르게 대우하는 인물도, 그리고 철저히 이슬람 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인물도 있다. 이때 가치관이 다른 인물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Hashim이 유물을 손에 넣은 후 끔찍하게 이슬람 교리를 따르며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자, 딸 Huma는 아버지에게 “she would wear no cloth over her face”라며 공공연히 대든다. 비록 집에서 쫓겨나기는 하지만, Huma의 대응 방식은 Doran이 더블린의 사회 규범에 순응하는 모습과는 분명히 다르다.
“The Boarding House”의 등장인물은 시종 가톨릭의 기준을 고수하며 언행을 평가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hair’의 영향으로 특정 인물의 가치관이 바뀌기도 한다. 그 예로 Hashim은 처음에는 종교적(‘religious’)이라기보다는 세속적(‘secular’)인 영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not a godly man”, “a man of the world, of this world” 등으로 칭한다. 그리고 우연히 유물을 주웠을 때 ‘hair’보다는 그것을 담은 ‘the silver vial’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유물을 얻고 나서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탈바꿈하여 쿠란에 극도로 집착하게 된다.
이때 ‘hair’는 그것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hair’가 상황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인물이 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어떤 행동을 보일지도 예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hair’는 고작 몇 분 동안 Sheikh Sin의 집에 있었는데, 다리가 멀쩡하지 않았던 Sin의 아들들은 ‘hair’덕에 비장애인이 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뛸 듯이 기뻐하는 게 맞지만, 그들은 ‘hair’가 가져다준 기적(‘miracle’)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구걸하여 얻는 수입이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 예상 가능한 결과가 도출되어야 조작자가 있을 수 있는데, “The Prophet’s Hair”에서는 상황도 대응도 변칙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Mrs Mooney처럼 특정한 규범을 내세워 타인을 옥죄지 못하고, 조작자는 등장할 수 없다.
정해진 가치체계에 따라 돌아가는 하숙집에서 인물은 크게 두 가지 행동양식을 보인다. 하나는 각종 규범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규범을 파악하고 상황을 변화시켜 제 목적을 달성하는 것, 즉 조작자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때 Doran는 전자의, Mrs Mooney는 후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작중에서 인물이 제시되는 부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술자는 인물을 설명할 때 주로 그들의 행동이나 외부의 평판을 끌어온다. 먼저 Doran은 Mrs Mooney의 눈에 [A]와 같이 비치는데, 이는 Doran이 보인 행동이나 생각([B])과 상당히 맞아떨어진다.
[A] “the man who had seen something of the world”
“a serious young man, not rakish or loud-voiced like the others”
“he had a good screw for one thing and (…) a bit of stuff put by.”
[B] “he attended to his religious duties and for nine-tenths of the year lived a regular life.”
“he had money enough to settle down on.”
“When he was dressed he went over to her to comfort her.”
Mrs Mooney도 그녀에 대한 서술([C])과 그녀의 행동([D])이 부합한다.
[C] “She was a woman who was quite able to keep things to herself: a determined woman.”
[D] “She governed the house cunningly and firmly, knew when to give credit, when to be stern and when to let things pass.”
“She watched the pair and kept her own counsel.”
“still, Mrs Mooney did not intervene. (…) At last, when she judged it to be the right moment, Mrs Mooney intervened.”
“She counted all her cards again”
이처럼 Doran은 종교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돈도 꽤나 있는, 건실한 신랑감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Mrs Mooney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능하고,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목표를 이루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Polly는 이 둘과 다르다. 앞의 두 사람은 비교적 정체성이 하나로 모여 있으나, Polly는 양면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olly는 47쪽에서 “perverse madonna”로, 48쪽에서 “her wise innocence”를 지닌 존재로 표현된다. 순결하기도 하고 조금 엇나가기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Polly에게는 정반대의 성질이 동시에 부여되기 때문에 일견 “The Boarding House” 속의 규범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Doran과 Mrs Mooney는 하나의 성격을 고수하며 규범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Polly는 양 극단을 넘나들며 행동반경을 넓히고, 이로써 더블린 사회가 요구하는 통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Polly는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난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머니인 Mrs Mooney처럼 규범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이는 Polly가 두 가지 특성 중 어디에 무게를 둘지를 상황에 맞게 선택한다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Polly는 어머니인 Mrs Mooney의 암묵적인 지지 하에 신랑감을 물색한다. 하지만 멀리서 힐끔거리기만 해서는 적합한 남자를 발견하거나, 이 사람이 신랑감으로 걸맞은지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Polly는 하숙집에서 발랄하고 살짝 문란하며, “perverse”한 인물로 행동한다.
그렇게 그녀는 Doran을 만나고부터 조금씩 태도를 바꾼다. 이는 “Polly began to grow a little strange in her manner”에서 유추할 수 있다.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말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Polly가 Doran과 친밀해지고 나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Polly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녀는 은근히 유혹적이면서도 정숙한 여인, 즉 “perverse madonna”가 되어야 한다. 아무한테나 추파를 던지는 상대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순조롭게 결혼으로 골인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이상적인 여인상인, 순결하고 정숙하며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Polly는 Doran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함께 해야 한다. 당시 혼전 관계(fornication)는 가톨릭에서 죄로 간주하는 행위였다. Doran은 가톨릭이 제시한 규범을 어기는 순간 모든 생활이 어그러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혼전 관계를 하면 Doran에게 결혼을 요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명분이 생긴다.
혼전 관계를 완료한 시점부터, Polly는 겉으로 순수한 피해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해야 한다. 그래야 “치떨리는 일을 당한 어머니”의 논거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미숙하고 세상 물정에도 서툰 Polly는 Doran에게 이용당한 것이었고, Doran은 감히 소중한 딸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보상을 해야 했다. 바로 결혼으로 말이다. Polly는 Doran의 목을 끌어안고 이제 어쩌면 좋으냐며 울다가, 눈물을 닦고 자신을 진정시킨다. 이윽고 그녀는 걱정 대신 “미래의 희망과 환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는 자신과 Doran이 결혼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확신이 없다면, 결혼하지 못할 경우 자기의 처지에 대한 우려가 앞서야 한다. 명예가 실추되고 혼삿길까지 막힌 여자를 누가 데려갈지 걱정하면서. 하지만 앞서 Mrs Mooney와 면담하면서 했던 생각에서 나오듯, Polly는 “순진하면서도 알 건 다 아는” 자신이 어머니의 의도를 간파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한다. 이를 고려하면, Polly는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기 전에, “wise innocence”를 십분 활용하여 Doran은 자신과 결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Polly는 Hashim처럼 우연한 계기로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정체성이 전환된 것이 아니다. Polly는 상반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가 양면성을 보이는 것은 하숙집에 작용하는 규율이 Polly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Polly가 어머니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과 소설이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Polly의 의도는 “give her the run of the young men”이 된다. 그런데 Polly는 종교색이 짙은, 고정된 가치체계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목적이 세속적이라도,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규범의 구속력을 빌려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Polly는 “perverse madonna”가 되어야 한다.
“The Boarding House”의 등장인물은 “The Prophet’s Hair”에 비해 훨씬 경직된 행보를 보인다. “The Prophet’s Hair”에서 Sheikh Sin은 “It would be necessary, he whispered, for him to vanish for a while.”에서 알 수 있듯 잠시 은신처에 숨어 있으려고 한다. 비록 얼마 안 있어 잡혀 죽긴 했지만, Sin은 자신이 사는 곳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인물이다. 이에 비해 Doran은 머릿속으로는 지붕을 뚫고 다른 나라로 날아가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결혼으로 끌려가는 처지다. 여기에는 인물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숙집, 더 넓게는 더블린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Mrs Mooney와 Polly도 나름대로 굳어진 사회 규범을 적절히 활용하지만, 결국 더블린의 하숙집 안에서만 살길을 찾는다. 이 둘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더블린에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매여 있다는 점에서는 Doran과 다를 게 없다. 인물은 이로써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교리와 규범에 얽매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