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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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빛의 호위는 조해진 작가가 썼으며, 201310월에 문학과지성사가 이달의 소설로 선정한 작품이다. 글은 A4 9쪽 정도로 상당히 짧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정교하게 구성한 덕에 다 읽고 나면 소설책 한 권을 완독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야기는 공항에 도착한 가 유리창 밖에서 눈이 내리는 걸 보며 권은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자인 는 분쟁지역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사진작가 권은과 인터뷰를 한다. 권은은 인터뷰 말미에 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 그 말을 계기로 는 그녀에게 두 번째 만남을 청한 후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권은은 시리아 난민캠프에 방문했다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는 병원에서 권은을 만난 후 뉴욕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참석한다. 권은이 언급했던 <사람, 사람들>를 본 가 극장을 나서며 권은과의 기억을 더듬는 모습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가는 권은과의 인터뷰, ‘의 기억과 같은 과거의 것들을 다큐멘터리를 보러 맨해튼으로 떠난 현재의 상황과 번갈아 배치한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궁금증이 생겼다가 풀리고, 다시 생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작품 읽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작가의 묘사도 탁월한데, 특히 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장면에서 돋보인다. 독자는 의 눈으로 권은이 두 번째 만남에서 언급했던, 헬게 한센의 <사람,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바라보게 된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카메라의 초점, 카메라가 담는 사람들의 모습, 인터뷰 대상자의 말과 표정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마치 미국의 어느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만 고마우면서도 아쉬웠던 것은 작가가 어떤 부분이 나중에 복선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직접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 일종의 힌트들이기도 했다. () 하지만 그날 그녀가 내게 건네고 싶었던 것이 () 열쇠와도 같은 것이었음을, 그때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권은과의 두번째 만남이 없었다면, 그래서 ()에 대해 듣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평생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힌트들은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 내게로 왔다.

작가는 위와 같은 서술을 통해 지금 인물이 한 행동이 미래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짚어준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상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간다. 이러한 서술은 독자가 뒤에 나올 내용에 집중하게 하고 글을 잘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복선을 알려주기보다는, 독자 스스로가 복선을 알아챌 수 있도록 넌지시 말해줄 수는 없었던 걸까.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인물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작품에서는 주로 장-알마, ‘’-권은이라는 두 관계가 두드러진다. 장은 유대인인 알마를 지하 창고에 숨겨 주었을 때 악보를 음식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알마는 그 악보를 소리 없이 연주하며 힘겨운 은신 생활을 견뎌냈다. ‘는 허름한 집에 혼자 있는 권은을 매번 찾아가며, 나중에는 카메라를 선물하여 권은이 사진 촬영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작가는 두 관계를 다큐멘터리의 출연자와 시청자라는 고리로 연결하여 공통점을 부각한다. 바로 타인을 향한 관심이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누군가를 절망의 늪에서 꺼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SNS가 유행하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라는 노먼의 말이 그들의 가슴에 와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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