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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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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서평 <지워지지 않으려고 지웠던 것>
페이지는 가제본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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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작가는 2016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19년과 2020년에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2018년에 출간한 소설집 여름, 스피드처럼, 이 작품도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다.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회피했던 위태로움으로, 하지만 그것을 직면하는 용기로 시작된다. ‘나’는 오랜만에 대학 시절 사귀었던 ‘혜인’에게서 자신의 단행본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현재 ‘나’는 작가로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지 않지만, 그 이전에 만났던 “그 시절의 사람들”(16)은 “지금의 나를 모르고”(16) 있다. ‘나’는 혜인에게만큼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곧바로 다음 주말로 약속을 잡는다. 분명 ‘나’는 칠 년 만에 “오랜 친구”(8)를 만나는 것인데도, “초조함”(12)과 “불안”(12)은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혜인’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애인의 배웅을 뒤로 한 채 하행선 열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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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 카테고리를 보고서 누군가는 ‘그들’의 비밀을 엿보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들출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달은 계기가 뭔지, 성소수자의 연애는 어떤지, 성소수자끼리만 공유하는 상징이나 문화가 무엇인지 염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성소수자와 자신의 차이점을 잔뜩 상상하고서는 지면에서 그것을 확인하기를, 그리고 그로써 성소수자를 자신과 엮일 일 없는 별종으로 취급하는 일이 타당해지기를 소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충실하게 배반한다.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성소수자를 자신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았고, 분명 주변인들에게, 어쩌면 우리 곁에 녹아들었다.
이는 작중에서 정체화 이전의 ‘나’, 그러니까 ‘나’의 대학생 시절을 평범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내’가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은 어휘부터 동선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 대학 학생이라면 작품의 몇몇 부분에서 학교 소식지를 읽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내용 또한 그리 낯설지 않다. 그 시절 대학생이 보일 법한 대화와 근심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관계가 바람대로 흐르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때론 상심하던 일 또한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이야기다. 이를 통해 ‘나’는 주변에 있었을 법한 평범한 엑스-대학생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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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는 결코 주인공의 소수자성을 도려내지 않으며, 이는 정체화 이후 사회가 성소수자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을 포착하며 성취된다.
“그 시절 내가 혜인에게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시간이 훌쩍 지나 나를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소환된 기억이자 대개 취사선택 된 감정이었다. 나는 혜인을 향한 감정을 부정하며 나를 다졌고, 혜인과의 연애는 언제나 ‘초석’으로만 제 구실했으며, 그 시절의 심문(心紋)을 살피는 일보다 다급한 건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엇이냐?’고 대면하는 일이었다.
내가 게이라는 명백한 사실앞에서 지나간 희미한 감정과 기억을 분석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의 나에게 귀 기울이는 건 현명하고 건강한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 앞에서 혜인은 번번이 지워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엄습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14-15, 밑줄은 인용자 표시)
성소수자 개인은 자신이 표현한 성적 지향과 불일치하는 경험을 축소하도록 압박받는다. 이는 과거의 경험이 (특히 사회의 암묵적 가정에 합치하는 경우) 스스로가 성소수자임을 인정받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교류가 조금이라도 이성애적 연애관에 합치하는 경우, 그건 너무나 쉽게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부정하는 증거로 오용된다. 결국 성소수자의 사랑은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던’ 이의 탈선으로 간주되거나, 혹은 교정(을 빙자한 폭력)을 통해 ‘예전과 같이’ 돌이킬 수 있는 선택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성소수자는 자신을 드러내며 억압당했던 자신을 되찾지만, 되찾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사회의 암묵적 가정을 거역하는 모습만을 드러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성소수자로서의 “나를 [다지기]”(15) 위해 ‘혜인’과의 기억을 지운다. 약점 같은 “흑역사”(15) 없이 ‘순수하게’ 성소수자여야만 자신을 부정하는 타인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명백한 사실”(14)이라고 설득할 수 있다. 주인공은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39)는 말로 정체화 이후의 심경을 표현한다. 이는 정체화 이전의 ‘내’가 희미해지지 않고선 게이로서의 ‘내’가 위협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자신의 성적 지향을 표현하기 위해선 그걸 ‘확립’하는 쪽이, ‘확립’하기 위해선 ‘혜인’과의 관꼐에서 “부끄러움”(15)을 느끼고 “혜인을 향한 감정을 부정하며” 사는 쪽이 현실적으로 쉬웠다. 과거 ‘혜인’과의 교류와 제 성적 지향의 양립 가능성을 외부에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겨우 선명해진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보다는 훨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