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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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학은 실명의 연속이다

 

서론

오이디푸스 왕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라 오이디푸스를 부친 살해 및 근친상간의 상징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소포클레스는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자로서의 오이디푸스를 부각한다. 이러한 노력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소포클레스는 신화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치밀한 추리 구도로 구성하였다.” 이렇게 비극을 구성한 덕에 오이디푸스는 살인범의 정체를 밝혀가는 존재로 두드러진다. 그리고 테이레시아스는 예언을 통해 살인범의 정체를 오이디푸스의 정체와 엮는데, 오이디푸스는 둘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를 고려하면 오이디푸스는 이성의 힘으로 과거를 재구성하여 진실을 밝히려 하는 근대적 인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적 인간상은 과학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세계의 작동 원리를 밝히기 위해서 끊임없이 현상을 관찰하고 이론을 교정하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초기에는 연구자 각각이 따로따로 현상을 연구하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 등장하면서 많은 학자의 믿음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렇게 과학은 과학자 집단의 연구를 동력 삼아 자신의 체계를 다듬어왔다. 요약하면, 집단을 이루는 과학자 개개인은 근대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이며, 과학은 이러한 과학자 집단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의 행보가 연구자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 전체의 흐름과도 유사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보고서에서는 먼저 오이디푸스 왕과학 혁명의 구조와 관련지어볼 것이다. 다음으로 육안에서 심안으로의 이행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필 것이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오이디푸스 왕에게서 드러나는 과학의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2. 본론

(1) 오이디푸스와 패러다임

인간의 인식작용은 주로 ’()을 통해 가능해지는데, 이때 감각작용은 바로 인식작용으로 이어진다. 이는 그리스어, 영어, 불어 등에서 본다는 동사가 안다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 우리의 눈은 단순한 감각기관을 넘어, 세계를 인식하는 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때 인식의 틀은 토머스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 개념에 대응된다. 그는 패러다임을 성취는 과학 활동의 경쟁 방식으로부터 끈질긴 옹호자들의 무리를 떼어낼 만큼 가히 전대미문의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유형의 문제들을 연구자들의 재편된 그룹이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상당히 융통성이 있는 업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패러다임을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으로 이해한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행보에서 과학의 전개 과정을 읽어낸다면, 실명 전후로 오이디푸스가 보인 변화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명 이전에, 오이디푸스는 눈으로, 그리고 눈을 통해 얻은 지식을 기초로 세계를 이해하였다. 이때 오이디푸스가 육안으로 얻은 지식 체계는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대응된다. 정상과학이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으로, “몇몇 특정 과학자 사회가 일정 기간 동안 과학의 한 걸음 나아간 활동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이디푸스가 직접 획득한 (인간의) 지식은 스핑크스를 무찌르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으며, 여태껏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성취를 이끌었다. 또한 작품 첫머리에서 제우스의 사제는 오이디푸스를 찾아와 역병의 원인을 알아내달라고 간청한다. 역병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자, 지혜로운 인간의 대표 격인 오이디푸스가 조언자로 낙점된 것이다. 이를 통해 육안으로 얻은 지식이 테바이를 발전시키는 이론적 토대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지식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된다. 바로 라이오스의 살인범과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예언의 형태로 답을 주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예언을 폄하한 후 경험과 관찰에 근거하여 예언의 가부를 판단하려 한다.

이 대목은 정상과학이 지배력을 잃어가는 시기와 대응된다. 한때 정상과학은 대부분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마스터키로 추앙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론의 허점과 반례가 하나둘씩 등장한다. 이에 정상과학은 제 몸에 수정안을 더덕더덕 붙이거나 일부 문제를 무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사실을 이론에 끼워 맞춘다, 오이디푸스가 본 자신은 코린토스에서 태어났으며 뛰어난 지식으로 왕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따라서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은 오이디푸스의 앎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일종의 변칙이다. 오이디푸스는 이 변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라이오스의 살인범을 추방해야만 역병이 끝나므로, 이 문제를 마냥 덮어둘 수는 없다. 남은 방법은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하며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길뿐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는 육안을 이용하여 예언을 부정할 근거를 보강하려 한다.

하지만 이오카스테, 사자, 목자의 말과 오이디푸스의 기억은 외려 예언이 옳다는 쪽, 즉 오이디푸스의 앎이 잘못되었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렇게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점점 긴장이 고조되다가, 마침내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불안과 충격은 절정에 이른다. 오이디푸스는 좌절하며 탄식하고, 곧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눈을 찔러 시각을 포기한다. 이는 과학 이론이 도저히 실제 세계와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침몰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이때 폐기된 과학 이론은 인간의 파편적인 앎에, 실제 세계의 작동 방식은 예언으로 표현되는 신의 앎에 대응된다.

 

(2) 심안을 향하여

오이디푸스는 지혜롭다. 오이디푸스는 누구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통쾌하게 풀어내었고, 끝내는 테바이의 왕좌까지 차지하여 지혜로운 군주로 추앙받는다. 오이디푸스의 명석함을 칭송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면, “첫 장면에 등장한 제우스 신의 사제의 눈에 오이디푸스는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들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자”, “가장 위대한 자”, “가장 고결한 자”, 스핑크스로부터 테바이 시를 해방시킨 가장 지혜로운 자로 비친다(31행 이하). 코러스의 눈에 비친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다(504행 이하).”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앎은 육안을 거쳐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계를 지닌다. 임철규는 눈의 역사 눈의 미학에서 눈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이며, 인식한다는 것은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부분이라는 틀, 인식의 틀 속에 가두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눈으로 세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이 인식의 범주에 속하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말 그대로 안중에도 없게된다.

이러한 육안의 속성은 오이디푸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비록 그는 육안으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정작 그의 눈은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1271-1273). 제 운명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눈이 무슨 쓸모가 있으랴. 그렇게 오이디푸스는 눈 또는 그것의 측정’(metron)에 기반한 과학적, 이성적 사유를 통한 앎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자각하였고, 이에 스스로 육안을 제거하였다.

실명 이후에,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처럼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육안을 상실한 상태가 심안을 획득한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테이레시아스의 심안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적인 것으로 신의 처벌과 보상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심안은 신에게서 부여받는 것이지, 인간이 스스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패러다임과 연결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 패러다임의 결점을 일부 메꾸더라도, 자연을 완벽하게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예언자의 심안과 최대한 비슷한 형태로 자신의 눈을 개조했고, 이로써 종래의 관견(管見)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는 곧 자신의 이론이 실제 세계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이론을 검토하며 진실에 다가가려는 과학자의 태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3. 결론

위에서 밝혔듯 오이디푸스가 육안에서 심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은 패러다임의 변화와 유사하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스스로눈을 찔렀다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감각의 한계를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찔러 육안의 편협함을 극복하려 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과학은 기존 이론의 허점이 충분히 많이 드러나면, 자기를 파괴하면서 다음 이론으로 나아간다. 이때 파괴가 수반되는 것은 해당 이론을 뜯어고쳐야만 기존 이론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토머스 쿤은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그것은 이미 성공적으로 완결되었던 과학 업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이 새로운 이론은 () 이미 알려진 것에의 단순한 축적적 보완인 경우가 드물거나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이다. 새로운 이론의 동화는 기존 이론의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를 요구한다고 말하였다.

이론은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버리는 것은 훨씬 고통스럽다.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때문에 육안으로 착실하게 쌓은 지식과 명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예언이 진짜라면 오이디푸스는 반드시 훌륭한 군주에서 극악무도한 패륜아로 추락하게 된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그는 테바이의 역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인에게 질문하고 그들을 추궁한다. 예언이 자신을 파국으로 내몰지언정, 당면한 문제를 유야무야 넘기지 않고 진실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이와 같이, 과학자 집단이 자신의 생각이 무참하게 파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넘어서서, 이론을 무기 삼아 세계와 부딪쳐나가는 과정을 참으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4. 참고문헌

소포클레스, 천병희 역,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 2008.

임철규, 눈의 역사 눈의 미학, 한길사, 2004.

토머스 S. , 김명자홍성욱 역,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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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선, 신화의 변형과 재창조: 오이디푸스 신화를 중심으로, 종교연구, September 2000, Vo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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