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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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만 봐서는 마치 햄버거라는 패스트푸드의 성립과정과 발전사를 다루는 미시사 교양서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엉뚱하게도 이 책은 소설이다. 그것도 대학 교직원으로 일하다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늦깎이 데뷔했고 스스로를 클라투 행성 지구 주재 특파원이라고 자처하는 특이한 저자의 첫 작품집이라고 한다. (저런 이름을 따오긴 했어도 동명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물 건너 SF영화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지만)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지 점점 더 알 수가 없어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잠자코 표지를 펼친 뒤 한장 한장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밖에.

수록된 작품은 전부 7편인데, 이들은 대략 4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뒤섞은 가상논문의 형태로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또 다른 역사를 천연덕스럽게 풀어내기도 하고(<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 유별난 사랑의 경험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기(氣) 수련을 하다가 만남의 본질을 깨닫는 청년을 보여주기도 하고(<옛날 옛적 내가 초능력을 배울 때>), 육체는 지구 위에 살고 있지만 스스로 유배당한 외계인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이들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조명하기도 하며(<생의 얼룩을 건너는 법, 혹은 시학>, <돌고래 왈츠>,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 역사 속에 한두 줄로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감춰진 사연을 추적하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괴롭고 슬프게 만들었는지 끈질기게 조명하기도 한다(<초설행>).

외계인, 초능력, 대체역사, 인류 외 문명, 환생, 영혼 전이 등 SF나 판타지스러운 장치를 일부 채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보다 간편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빌려온' 것에 불과하며 작품들의 경향 자체는 장르문학이라기보다는 순문학에 가깝다. (특히 <초설행>은 아예 이러한 클리셰를 완전히 배제한 현실 기반의 역사소설이다.) 저자의 전방위적인 지식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힘입어 펼쳐지는 농담의 향연이 물론 흥겹기는 하지만, 그러한 농담들은 어디까지나 곁가지 혹은 당의정에 지나지 않고 작품들이 하려는 얘기는 따로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의 포인트가 마치 '유쾌한 SF적 상상력'에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 출판사의 태도는 다소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저자가 보여주는 상상의 산물들은 그다지 참신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상을 도구로 활용하여 극중 인물의 '감성'을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수록된 작품들의 다양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소재로써 '시(詩)'와 '사랑'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동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이며 서사적이라기보다는 서정적인 색채를 띠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는 극중 인물의 심리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변화해가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특징을 가슴에 새겨두고 책을 다시 읽어내려가다 보면, 각각의 작품들이 특정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고백하는 연시(戀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 역동적이고 외향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지만, 반대로 시와 사랑에 대하여 탐구하고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꽤 흥미로운 선물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소설의 형태와는 좀 동떨어져 있지만, 문학의 새로운 형태를 실험하여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 시도로써는 눈여겨볼만하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분명 조현이라는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비범한 세계를 구축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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