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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사람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주로 작가분이나 장르를 고려하고, 추천사를 자주 읽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는 백수린 소설가의 추천사는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외로운 시기에, 외롭지 않게 해주는 책이라니 단숨에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꽤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의 배송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보통 기대하는 책이나 영화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채로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 전까지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에게 책장을 넘기는 순간의 당혹감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은 어딘가 공기 같고, 목적성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나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가 뚜렷하고 결말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극적인 소설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시작부터 끝까지 큰 기승전결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약간 당황했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들을 읽으며 자꾸만 “그래서… 무슨 얘길 하고 싶은거야?” 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은 지금, 윌리엄 트레버가 이 ‘이야기 자체를 이야기’ 하려고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의 소설은 마치 풍경 같고, 산책 같은 것이라 독자 또한 그런 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가끔은 발 밑의 들꽃을,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을, 혹은 건너편에서 산책하는 다른 이들을 구경하듯이, 그렇게 천천히 구경하며 읽으면 내 마음 속에도 그 풍경이 고스란히 남는다. 그것이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읽는 법이었다. 그것을 알고나니 책 속에서 더 많은 순간을 볼 수 있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글을 보고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헤매지 않기를 바라며 공유한다. 나 또한 지난 경험을 가이드 삼아 다시 한번 이 책을 거닐 예정이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두 사람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았고, 후회나 과거에 있었을지 모를 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단어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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