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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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쁜 남자 신드롬이란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아류로 차도남이란 개념이


있긴 하지만. 여성들이 나쁜 남자에 열광했던 이유는 뭘까? 그건 '그래도 내 여자에겐 따뜻하


겠지.'란 믿음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 믿음. 성장 배경 혹은 유년시절 마음의 상처로 인해 


거칠어진 그의 성격이 마치 로션을 바르지 않은 피부라도 되는 양 어루만질 수 있을 거란  너는


펫이란 마인드부터 나쁜 남자라는 탈 속에 숨은 그 순수한 영혼을 그녀 자신만이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는 그 귀여니스런 오만함까지. 아마도 모성애를 갖춘 그네들이기에 그런 판타지를


창조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인 필자의 입장에선 나쁜 여자란 나쁜 年일 뿐이고 나쁜 남자란


주먹다짐이 오갈 대상일 뿐이기에.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우리들은 흔히 모든 악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악은 무섭지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악은 애수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믿음으로 악에 가까운 혹은 물든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그런 대중들의 믿음을 배반하는 개념이 등장했다.


바로 사이코패스다.




흔히 연쇄살인마와 동의어로 쓰이곤 하는 그네들에게 살인의 이유는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그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마도 기분 탓이겠죠."




성장배경, 콤플렉스,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혹은 정신질환등은 그들의 형량을 낮추는 법률적


소인일 뿐 그들의 악을 설명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사회에는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혹스럽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 아니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 질문에 대답을 나는 이 좀비라는 소설에서 조금은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호러무비나 공포소설을 좋아해 좀비라는 제목에 이끌려 본의아니게 접하게 된 책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는 좀비란 제목에 낚인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제프리 다머라는 연쇄 살인범의 실화를 기초로 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이 책을 


쓴 조이스 캐롤 오츠란 작가가 여자란 점이었다. 그게 뭐가 특별하냐고? 글쎄. 굳이 말하자면


희소성이라고나 할까? 사이코패스에 관한 많은 책을 읽어봤지만 여자가 쓴 책은 처음이었


으니까. 게다가 앞에서 말했듯이 남성과는 관점이 다른 여자이기에 어떠한 관점으로 이


절대악을 서술했을지도 굉장히 궁금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여자라는 느낌을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 기분으로 말하자면 소주 한병을 깐 뒤 안주가 없어서 북어포 대용이라는 기분


으로 소주 한 잔에 이 책을 뜯어 한 장씩 한 장씩 목구멍으로 구겨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그녀의 글은 목이 막힐 듯 갑갑하고 건조했다. 게다가 이 문체의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이 책은 제프리 다머의 소설 속 인물인 Q_P_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어 그의 살인 과정 뿐 


아니라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역겨운 욕구들은 필터링 없이 그대로  전달해 그야말로 독자를 


공범의 입장으로까지 만들어준다. 아, 이 책을 마치고 난 이 상쾌한 기분이란... 퉷!!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서서히 잔혹함과 역겨움의 물이 빠진 건조함이 머릿속에 남으며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것은 슬픔과 비슷하지만 그 책 속에 나오는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 대한 감정이입은 아니었고 공포를 느꼈지만 그 또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감정


은 아니었다. 그리고 문득 왜 책 제목이 좀비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자. Q_P_가 피해자들을 납치해 경안 뇌엽 절제술로 만들려고 했던 존재가 좀비였다. 


조금 심화시켜보자면 이 책에서 말하는 좀비란 인위적인 뇌절제술로 자아를 박탈당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를 조금 포괄한다면 Q_P_역시 좀비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위적으로 자아를 박탈당한 사람과 달리 그는 이미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절제하고, 욕망의


대상이 느껴야할 감정과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자아가 결핍된 인간이었다. 뇌수술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이를테면 그는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바로 동물과 인간을 


구분지을 수 있는 그 기준을 상실한 어쩌면 영혼이 없는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국 이 책의 이야기는 인간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 바로 내 이야기 말이다.


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내 영혼이 아닌 본능과 욕구라면 나 역시 그 좀비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좀비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우리는 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겠어. 그런 것 같다.


우리들이 사이코패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듯 우리 안에 있는 본능과 욕구의 목적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은 인간 중심의 천동설에 빠져있던 나에게 영혼 중심의 지동설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천동설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손가락질하며


심판에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담때문인지 그녀의 글에서 주인공에 대한 감정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단 한 구절만 빼고.




마치 그 구절은 종교재판에 소환되어 교회의 겁박으로 자신 스스로 지동설을 부정하고


재판정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던 갈릴레이를 연상시켰다.


그 구절은 맨 이 책의 맨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이다.




-어머니가 전화해서 메시지를 남겼다. 자동응답기 테이


프가 망가져서 메시지 대부분이 지워졌다. 아마 크리스마


스 저녁 식사에 오겠느냐는 얘기겠지.




난 이 구절에서 인간의 본연의 감성을 느낄 수 없는 불구자의 담담한 고백을 엿들은 것만


같았다. 너무 쓸쓸하고도 처연했다. 어떠한 형용사와 부사도 덧붙이지 않은 구절이었는데도


난 제임스 캐롤 오츠의 감성을 이 구절에서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난 이 책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어두운 본성을 꺼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 바깥에 있는 것 같다. 궁금하신


분은 책의 뒷표지에 빨간 글씨로 스여진 문구를 읽어 보시길 바란다. 아마도 그것이


조이스 캐럴 오츠가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ps:웹서핑을 하다보니 제프리다머의 친구가 그린 만화를 올려놓은 개인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다. 제프리 다머의 학창시절을 볼 수 있고 그의 죄는 아니지만 그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만화이기에 여기에 주소를 올려놓았다. 참고하실 분들은 보시기를.


http://blog.naver.com/msh6883/201573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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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에스시 -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
<Esc>를 만드는 사람들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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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 하지만 아직도 아저씨란 호칭은 낮설기만 하다. 한때 X세대 N세대라 불리며, 요즘 신세대들을 알고 싶다던 우리 세대를 향한 어르신들의 울부짖음의 잔향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아저씨라니. 응!

그러나 그것도 자주 듣다보니 요즘은 무덤덤하다. 서른이란 나이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죽을 뚱 살 뚱 되뇌이고 부정하고, 고민하는가 했더니 역시나 서른이 되니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빠른 생년월일 덕분에 어떻게 보면 29일 수 있고 30일 수 있는 나이기에 서른이란 나이조차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런 내게 서른에 함축되고 암묵되는 사회적 인식을 쉽사리 받아들이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삼십대 남녀를 겨냥한 소설들을 많이 읽는 편이다. 괜히 조바심도 나고 내 정체성은 뭔지, 아직도 나이값을 못하는 난 혹시 피터팬증후군은 아닌지 하는 소심한 A형 티내는 걱정들 덕분에 활자 = 자자.란 공식의 나에게 독서라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뭐랄까? 서른을 알기위해 서른의 삶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자기합리화라든지 자기 연민같은 게 생겨 우울한 기분이라든지 냉소적인 시선이 생겨 가끔 거울을 볼때면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를 되뇌던 여왕의 마음이 공감이 되면서, 괜히 백설공주가 미워지면서, 독대신 140칼로리를 함유한 사과를 두손으로 쪼개 우걱우걱 씹어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사서 고생하는 인생 덕분에 한참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나보다 6~7 살정도 어린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때 서태지를 노래를 들었다고 할때 '우리들은 1학년'을 부르던 초딩들이 커서 나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내 고민은 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괜히 수치에 불과한 내 나이때문에 날 노땅취급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 덕분에 나와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격에 문제가 있다거나 인간관계가 엉망이란 말이 아니다. 내가 가진 기준으로 볼때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을 뿐 그 자체로 볼땐 시시비비를 가릴만한 일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업무능력은 대다수 뛰어나 할일은 제대로 하는 친구들이었다. 다만 그 외부분에서 과거 남의 눈치를 보며 해야할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을 정하던 내 기준과는 달리 그 친구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일을 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빛나는 별들이 있기에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빛을 내던 나 보듬달은 왠지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달이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 내 감정도 나조차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질투였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기에 그만큼 주변에 드리운 어둠을 더욱 짙게 한다.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지만 자신만의 궤도를 도는 그들은 그에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덧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들은 그 주위를 돌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광우병 시위에 스스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서는 학생들이 그런 친구들이리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뜬금없다 생각할 지 모르겠다. 책 리뷰를 쓴다며 나이가 서른이라느니 요즘 애들은 4가지가 없다느니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으니 말이다. 하지만 완전 쓸데없는 소리는 아니다. 내게 이 ESC란 책이 그랬으니까. 이 책을 다 넘기고 난 다음 혼잣말처럼 툭 내뱉은 말은 이거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마치 지네들만 세상을 즐겁게 사는 법을 알고 있고 남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는다면 머리말에 그렇게 써놓고는 카메라이야기며 해외 여행이야기를 끄적대며 지네페이스로 우리를 이끌려는 심산은 뭔지 난 삐죽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건방진 새내기들 덕분에 난 알고 있었다. 이건 '너도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못 살면 등신이다'라는 과거 그런 계몽적인 책이 아니라 '난 이런데 넌 어때?'라는 친구에게 던질 수 있는 가볍고도 소통을 하고자하는 마음이 담긴 책이란 것을 말이다.

나 이렇게 좋은데 너도 이렇게 좋은 거 있으면 내게 알려줘. 그게 건방짐과 버릇없음으로 자주 오해되곤 하는 그들의 천진함과 순수함이다. 그들도 순수하고 이 책도 순수하다. 이 순수함을 단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느덧 일그러진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그리고 자주 미소를 자아낸다. 이런 방법이 있었어? 이런 것도 있구나. 나도 해봐야겠다란 생각을 자주 들게 한다. 의무감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세세한 내용과 콘덴츠에 대해선 말하지 않으련다. 이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리뷰에도 구해됨 없이 순수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내 리뷰도 읽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가 행복하다는 이유로 나의 행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글이 담긴 이 책을 보며 난 요즘 내 안에서 솟구치는 빛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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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우주로 가는 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지음,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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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인터넷에는 박지성선수가 거의 영웅이 되어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할지도 모를뿐 아니라 세계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스타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뿌듯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반해 기자들은 박지성선수와의 인터뷰를 썩 내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박지성선수는 언제나 모범답안 같은 인터뷰로 일관해 기삿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호나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맨유선수 전원이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다. 특정선수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기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 한다면 앞으로 있을 경기에 대한 각오에 대해서는 "국민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라는 식이라고 보면 된다.

  

 

 

어느 화제에 대해 물어도 '최선'이나 '노력'이란 단어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자신만만하며 농담을 툭툭 던져 흥미거리를 제공하기도 하는 이천수선수와는 정말 대비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악플이나 안티가 많은 이천수선수에 반해 박지성선수의 이미지는 국민MC 유반장만큼이나 바르고 좋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 때문에 축구선수 박지성은 알지 몰라도 인간 박지성은 잘 알 수 없다. 실수도 하고 화도 내고, 그러다 웃으며 농담도 던지는 이천수선수 같은 경우 우리와 부대끼는 사람이라 여겨지지만 박지성선수같은 경우는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느껴지기도 한다.(그래서 내가 유반장보다는 거성(巨星) 박명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책 리뷰를 쓴답시고 박지성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의 영웅인 인류최초의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자서전이다. 때문에 백과사전의 흑백사진으로만 보았던 그와의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함께 이 책을 펼쳐 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영웅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 그가 속했던 시기가 사상과 이념이 대립했던 냉전기였기에 그의 상황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 그려진 사실은 박지성선수의 인터뷰만큼이나 모범적이고 기계적이다.

 

  

 

예를 들어본다면
"이런 감동적인 글을 읽고 나면 우리는 조국에 대해서만 아니라 사회주의 모든 진영과 세계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중략).. 그러한 비행이 정말로 성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평화정책의 승리가 되며, 지구상의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의 승리가 되리라."

 

 

대다수 그가 기술한 자신에 대한 감정이나 개인적인 의견은 이런 식이다. 마치 감정을 거세당한 김일성의 동상을 보며 울부짖는 북한 동포의 모습을 보는 듯 딱딱하고 근엄하다. 때문에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는 그가 우주비행을 하는 여정의 사실적인 기술에 있을 뿐이었다.

 

 

난 인터넷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다수 인터넷소설은 로맨스를 근간으로 하지만 그 밑의 본질은 슬픔에 맞닿아 있는데 독자에게 슬픔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 글만 슬퍼하고 글만 눈물흘리는,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소통의 장점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 슬픔을 강요하는 듯한 오프라인보다 못한 일방적인 소통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터넷소설이 아니더라도 책만으로 사람들을 일깨우고 대화하는 오프라인 소설들이 더욱 인터넷소설답다고 난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웅이라는 것도 그 사람을 근엄하게 나타내고 장대하고 웅장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보고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다.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을 평범함 속에서 보통사람들처럼 그 고난과 위기를 겪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마음과 식견을 배우고 성장한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영웅 혹은 위인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책은 반어적으로 유리가가린 그 역시 영웅이 아닌 체제안에 귀속된 보통의 인간임을 내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가 아닌 '유리 가가린은 보통 사람이었다.'의 제목으로 더 와닿는다.


지금까지 쓴 걸 보니 내가 가가린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듯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는 분명 역사적인 인물이고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이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과거와 지금, 왜곡된 태도가 변한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부정적인 논조가 나왔던 것 같다.

 

 

 

박지성은 영웅일지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핸디캡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노력함으로써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으니까. 유리 가가린 역시 영웅일지 모른다. 한번도 인간이 나아가지 못한 우주속으로 힘든 훈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을 했던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론과 인터넷 여론이 그려내는 박지성의 모습과 이 책이 그려내는 유리 가가린의 모습이 정녕 박지성과 유리 가가린 그들의 진짜 모습인지 아니면 그것이 우리가 보고자 했고 보고 싶어 했던 우상에 가까운 모습은 아닌지 한번 정도는 되새겨봐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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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이 있는 풍경
이상엽 사진.글 / 산책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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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 수요일마다 안보교육을 한다며 작업에 한창 바쁜 군인들을 끌고 와 교육관에서 초록색 책자(포켓북만한)를 나눠주고 일장연설을 하던 기억이 있다. 까맣게 그을린 이마를 긁적거리며 만화책을 줘도 글씨가 눈에 들어올까말까한 어느덧 단순명료해진 군바리에게 4포인트도 안될 것 같은 글씨에 자그만 책을 주는 건 꿈나라로 가라는 간부의 묵언의 배려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는지 수면제같은 연설로 늘어놓는 간부들은 끊임없이 꾸벅거리는 날 감동이 아닌 얼차려로 일깨우곤 했다. 어느덧 안보교육의 주제였던 '우리의 주적은 공산당'은 '우리의 주적은 간부들'이란 말로 내 무의식속에 새겨지고 말이다.

덕분에 군대를 갔다온 지금도 공산당에 대한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덜한 편이다. 명색이 초등학교 시절 이승복어린이에 대한 반공웅변대회에서 상도 탄 기억도 있는데도 말이다.(자랑하려고 한 말은 아니고^^)

공산당. 이만큼 빛이 바래고 닳고 닳은 말도 없다. 예전엔 빨갱이하면 치를 떠는 어른들을 보며 덩달아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고 그 시절 동화책에도 빨갱이는 무서운 도깨비같이 그려지곤 했었다.(개인적으로는 발가벗어서 빨갱인줄 알았더라는. 지금 생각하면 바바리맨이미지 정도?) 하지만 어느덧 빨갱이보다 무서운 것이 많아지고 또한 그만큼 둔감해져버린 지금 2000년대는 좀비가 뛰어다니고 내장정도는 터져줘야 좀 무서운데할 뿐 빨갱이 공산당에 소름이 돋고 이를 갈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공산당이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체제였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견했던 이념이었지만 오히려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지는 아이러니를 낳으며 공포스러웠던 존재는 순간 세계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이 세상에 순수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말았고 냉전의 위협에서 벗어난 세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잠시 잊었다. 아직 순수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공산국가가 있다는 것을. 맞다. 바로 북한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틀리진 않는 것 같다.

따라서 모든 세계가 웃고 있을때 같이 웃을 수 없는 유일한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 한국이다. 겸언쩍어 따라 웃는 척해도 어느 유행가가사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에게는 역사의 잔재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에게 엄연한 현실이기에.

덕분에 한국인들은 아주 기묘한 위치에서 살고 있다. 19세기의 잔재인 공산주의와 대치한 21세기 세계최고의 IT국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국민에 의한 여야의 교체가 이루어진 민주국가로서 김일성 김정일로 대변되는 일당 독재의 정치상황을 마주보는 상황이니 말이다.

따라서 386세대였던 이 책의 작가 이상엽씨는 혼란스러웠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몸소 겪었던 유일한 세대였으니까 말이다. 그의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어린시절, 군부독재에 맞서 자유를 외치며 최루탄을 산소삼아 호흡하던 시절, 그리고 어느덧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묻혀 국민연금에 한탄하고 연말정산을 위해 현금영수증을 챙기는 지금 자신을 바라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세뇌를 받듯 미워해고 타도해야할 공산주의의 시발점이었고 아직도 죽은 레닌이 살아있는 듯 박제되어 있는 그 곳, 우리의 역사를 일그러뜨린 진앙지, 바로 러시아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쓴 이 책의 형식을 이루는 정서는 낭만주의이다. 아마도 여행의 추억만을 퍼올리기엔 그의 42년 된 우물은 너무 깊어진 듯 했다. 하지만 사진작가답게 그의 시선은 평범하지만 세심했다. 감각적이진 않지만 잔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러시아를 담기 좋았다. 그가 보여준 러시아의 겉모습은 이미 세련되고 감각적인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그는 현대화되고 자본의 바람이 부는 러시아의 본모습을 마치 엑스레이를 찍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엑스레이에 투사되는 마지막 이미지에는 언제나 레닌이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고 수업료를 벌기위해 핸드폰 홍보를 하는 타냐가 있는 거리에도, 졸업여행을 온 시골여고생들이 미국식 패스트푸드를 먹는 도시에도, 미니스커트 아래 내뻗은 하얀 허벅지를 더듬고 그의 목덜미에 숨결 내뱉는 연인의 밀회장소였던 붉은 광장에도 레닌은 있었다.

그는 점점 레닌을 연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레닌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잊혀지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를 보며,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구나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더불어 그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한국인을 닮은 우리와 비슷한 민족양식을 공유하는 민족들도 알게 된다. 우리의 노래 '아리랑'이란 말이 그네들의 말에도 있고 아리랑, 쓰리랑이란 말이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로 쓰인다는 사실은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의 가슴을 짠하게 한다.

덕분에 그는 적의 소굴에서 고향을 찾은 격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건 필연일지 모른다.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사의 시작이자 그에 휘말린 개인사의 시작이 공산주의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너무도 익숙했고, 모든 것이 금방 나타나고 사라지는 지금, 공산주의의 환영은 이젠 그에게 향수처럼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내리지 않는 백야의 그림자가 더욱 짙음을 그는 느끼며 세련된 현대 러시아의 모습에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사람의 냄새를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이 들었는지 거리에서 심한 애정행각을 하고 담배와 술을 마시는 러시아 청소년들을 보며 염려스러운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꼰대처럼 말이다.

아마 그는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남아있던 공산주의의 허상이 이 여행과 더불어 완전히 사라졌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레닌의 박제를 보며 이젠 흙으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그의 안쓰러운 마음에서 더이상 이념이 아닌 사람이 느껴지기에 그의 여행이 헛되지 않음을 또한 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자그마한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니 모든 여행기가 그렇듯 여행을 마치는 부분이 아쉽다는 점이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 그리고 그의 시선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이 또한 궁금하다. 여행의 시작은 낯선 곳이겠지만 그 마지막은 언제나 고향이기 때문이다.

시차만큼이나 아직은 가지고 있을 고향에 대한 이질감을 조금이나마 담아주었다면 이 여행기의 마지막이 가슴 뭉클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마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지도자가 악수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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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영어 Sense English - 영어울렁증 완전극복처방전
조영민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모두가 다 알다시피 영어란 언어이다. 언어란 문화이고 습관이자 생활양식이다.

이 같은 전제를 통해 일구어지는 결론이란 것은 결국 언어란 몸으로 부대끼며 터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좀더 기탄없이 이야기해본다면 우리가 평소 접하고 사용하는 한글과 한국어라는 언어조차 최근 유행하는 공무원시험에서 손꼽히는 난코스로 지목되어지고 수험생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조차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데 우리가 쓰지 않는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이 과연 쉬울 수 있을까?

이런 두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시중에 나와 있는 영어책에 대한 내 생각은 지극히 냉소적인 경향이 있다. 책한 권으로 영어를 터득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는 특히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말도 안된다고 언제나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영어책을 고르는 특히 수험서 - (수험서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이미 영어에 한계를 느끼고 영어실력이 아닌 영어를 통한 시험점수 향상에 온 힘을 기울일 테니까) - 가 아닌 영어입문서에 대한 독자들의 자세는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책을 고르는 그 10분 아니 10초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영어로 인해 혼란스러운 자신을 정립시켜줄 구원자를 찾는 기분만큼은 진심일 것이다. 이 한권의 책으로 내 영어인생이 바뀌고 싶다라는 지극히 간절한 바램...
토익과 토플대란이 일어나고 취직과 사회의 진입장벽이 영어로 통용되는 요즘이라면 그 바램이 유난스럽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책이 과연 있을까?

물론 그런 책은 없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그런 책이길 기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의 표지 뒷장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자전거 보조바퀴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이라는 것만큼은 보증할 수 있다. 내 말에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들은 과연 설명과 이해만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가?"

자전거를 타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과 설명서가 아닌 자전거를 배우는 이들이 자전거의 밸런스를 익히고 페달을 밟는 힘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메커니즘을 몸소 체득할 수 있게 하는 자전거 보조바퀴일 것이다.
이 책을 접해본 독자들 중 몇몇 이들은 책에 쓰여진 저자의 기발한 영어개념과 알기 쉬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이 그래도 영어가 이렇게 쉬울리 없잖아." 라며 이것은 영어에 대한 이상론적인 자세가 아닌가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어느 것이 이상론적인 자세인가? 자전거를 타야하는 데 말로 설명을 해 주고 자전거의 부품명세서를 보여주는 자세가 과연 현실적인 자세인가? 아니면 실제로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지 않게 달아주는 보조바퀴가 이상론적인 자세인가?

한가지만은 확실히 하자. 이 책은 영어를 할 수 있게 하는 책이지 영어점수를 높여주는 책이 아니다. 그것도 단기간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본말을 전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어를 잘 하게 된다면 영어점수가 높을 수는 있겠지만 영어점수가 높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일례로 토익 950의 굴욕을 들어봤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영어점수이지만 그 중심에는 회화와 독해를 비롯한 영어실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더 깊이 그 본질에는 글로벌 시대에 세계인들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본질인 영어를 통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기초와 반석을 제공하는 책이다. 그 기초와 반석으로 영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즉 보조바퀴로서 자전거를 타는 공포증을 없애 쉽게 다가가 탈 수 있게 하는 기능만큼은 탁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외워야 하는 많은 영어 공식과 개념들이 이 책에서는 가지고 놀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장난감과 즐거움이 된다.

영어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이영표의 명언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이 책을 접하며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모티베이션으로 작용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책이 포켓북으로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언어는 끊임없이 접해야 한다. 회화를 끊임없이 이어폰을 통해 들으며 귀에 익숙해 지도록 하는 것과 같이 이 책속에 녹아 있는 영어에 대한 발칙하지만 진지한 관점 또한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체득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산 돈이 후회스럽지 않다. 적어도 영어입문자는 아니었지만 영어에 대한 색다른 관점과 그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저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난 만족한다.

이 보조바퀴는 당신이 뒤뚱거리더라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줄 좋은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언젠가 이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힘찬 페달질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당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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