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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에스시 -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
<Esc>를 만드는 사람들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내 나이 서른. 하지만 아직도 아저씨란 호칭은 낮설기만 하다. 한때 X세대 N세대라 불리며, 요즘 신세대들을 알고 싶다던 우리 세대를 향한 어르신들의 울부짖음의 잔향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아저씨라니. 응!
그러나 그것도 자주 듣다보니 요즘은 무덤덤하다. 서른이란 나이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죽을 뚱 살 뚱 되뇌이고 부정하고, 고민하는가 했더니 역시나 서른이 되니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빠른 생년월일 덕분에 어떻게 보면 29일 수 있고 30일 수 있는 나이기에 서른이란 나이조차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런 내게 서른에 함축되고 암묵되는 사회적 인식을 쉽사리 받아들이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삼십대 남녀를 겨냥한 소설들을 많이 읽는 편이다. 괜히 조바심도 나고 내 정체성은 뭔지, 아직도 나이값을 못하는 난 혹시 피터팬증후군은 아닌지 하는 소심한 A형 티내는 걱정들 덕분에 활자 = 자자.란 공식의 나에게 독서라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뭐랄까? 서른을 알기위해 서른의 삶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자기합리화라든지 자기 연민같은 게 생겨 우울한 기분이라든지 냉소적인 시선이 생겨 가끔 거울을 볼때면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를 되뇌던 여왕의 마음이 공감이 되면서, 괜히 백설공주가 미워지면서, 독대신 140칼로리를 함유한 사과를 두손으로 쪼개 우걱우걱 씹어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사서 고생하는 인생 덕분에 한참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나보다 6~7 살정도 어린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때 서태지를 노래를 들었다고 할때 '우리들은 1학년'을 부르던 초딩들이 커서 나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내 고민은 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괜히 수치에 불과한 내 나이때문에 날 노땅취급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 덕분에 나와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격에 문제가 있다거나 인간관계가 엉망이란 말이 아니다. 내가 가진 기준으로 볼때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을 뿐 그 자체로 볼땐 시시비비를 가릴만한 일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업무능력은 대다수 뛰어나 할일은 제대로 하는 친구들이었다. 다만 그 외부분에서 과거 남의 눈치를 보며 해야할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을 정하던 내 기준과는 달리 그 친구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일을 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빛나는 별들이 있기에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빛을 내던 나 보듬달은 왠지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달이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 내 감정도 나조차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질투였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기에 그만큼 주변에 드리운 어둠을 더욱 짙게 한다.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지만 자신만의 궤도를 도는 그들은 그에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덧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들은 그 주위를 돌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광우병 시위에 스스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서는 학생들이 그런 친구들이리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뜬금없다 생각할 지 모르겠다. 책 리뷰를 쓴다며 나이가 서른이라느니 요즘 애들은 4가지가 없다느니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으니 말이다. 하지만 완전 쓸데없는 소리는 아니다. 내게 이 ESC란 책이 그랬으니까. 이 책을 다 넘기고 난 다음 혼잣말처럼 툭 내뱉은 말은 이거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마치 지네들만 세상을 즐겁게 사는 법을 알고 있고 남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는다면 머리말에 그렇게 써놓고는 카메라이야기며 해외 여행이야기를 끄적대며 지네페이스로 우리를 이끌려는 심산은 뭔지 난 삐죽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건방진 새내기들 덕분에 난 알고 있었다. 이건 '너도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못 살면 등신이다'라는 과거 그런 계몽적인 책이 아니라 '난 이런데 넌 어때?'라는 친구에게 던질 수 있는 가볍고도 소통을 하고자하는 마음이 담긴 책이란 것을 말이다.
나 이렇게 좋은데 너도 이렇게 좋은 거 있으면 내게 알려줘. 그게 건방짐과 버릇없음으로 자주 오해되곤 하는 그들의 천진함과 순수함이다. 그들도 순수하고 이 책도 순수하다. 이 순수함을 단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느덧 일그러진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그리고 자주 미소를 자아낸다. 이런 방법이 있었어? 이런 것도 있구나. 나도 해봐야겠다란 생각을 자주 들게 한다. 의무감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세세한 내용과 콘덴츠에 대해선 말하지 않으련다. 이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리뷰에도 구해됨 없이 순수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내 리뷰도 읽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가 행복하다는 이유로 나의 행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글이 담긴 이 책을 보며 난 요즘 내 안에서 솟구치는 빛을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