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 - 20세기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개정판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교과서를 읽었는데.. 이해가 잘 되는 교과서를 읽은 느낌 ㅋㅋㅋ나름 스토리가 있고 교과서처럼 딱딱하지 않아 좋긴 했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배워야할 내용을 최대한 설명으로 풀어내 학습자가 이해하기 좋게 만든 책. 나는 지금까지 고인돌이 권력자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돌을 옮겨 만든 거라 생각했었는데, 나름 과학적으로 땅을 파서 받침돌을 세우고 지상위로 올라온 부분을 무덤처럼 덮은 다음 덮개돌을 얹고 흙을 치워 세운 건 지 몰랐었다. 이런 설명이 다 되어 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것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


몰랐었는데, 돈이 없는 환자를 몰래 탈출시켰던 바보 장기려 박사가 이산 가족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마지막 황천길 가기 전에 이산 가족이었던 노부부가 짧은 사랑, 긴 이별의 아픔을 보여줬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과, 장기려 박사 부부의 편지, 그리고 이산 가족이야기와 더불어 장기려 박사에 관한 글을 엮어 아이들한테 가르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생이 공부할 때 정말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정말 읽을 책이 다 떨어져서.. 이걸 읽었다 ㅋㅋ


한글 학교 가서 아이들 역사를 가르칠 때 생각을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이들 중 한국어를 왜 배워야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아이들이 정말 있고..

한국 역사는 더더욱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들에 대해서도 고민하지만 어떻게 하면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한다. 


수업 시간은 제한적이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주고 싶지만 우리 역사속에서 반짝이는 것들 내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읽었다. ^^


* 2권

1. 독립은 선언한다고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세에 맞서려는 의지가 나라 안에 가득할 때 그리고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지킬 수 있다. 


2. 장지연 - 시일야방성대곡 - 을사조약 체결 과정을 알리고 이에 찬성한 매국 대신을 규탄 

이재명은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 

안중근은 을사조약을 강요하고 초대 통감으로우리 나라 침략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주권 회복 운동으로 이어졌다.


3. 내 삶은 걸작이고 싶다 - 서양화가 문학인 나혜석


4. 3.1 운동- 1월 1일에 시작된 운동은 5월이 되자 수그러들었다. 군대를 동원한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1운동은 일제의 억압적인 통치 방식을 변화시켰ㄲ다. 거족적인 투생으로 일제가 그토록 억누르려 했던 시민적 자유를 일부나마 쟁취하여 민족 운동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나라밖에서 임시정부가 조직되고 무장 독립군 활동이 크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5. 유관순- 가혹한 고문을 받아 몸을 사눌 수 없는 상태에서도 당당하게 재판을 받았으며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며 동지들을 격려하다가 옥사했다.


6. 친일파 - 이들은 일본인보다 더욱 철저하게 밍본인처럼 행세하면서 우리 민족을 감시하고 민족 운동을 탄압했다. 부유한 이들은 자산을 털어 비행기를 헌납하거나 수많은 돈을 전쟁 헌금으로 냈다. 


7. 1920년대 임시정부는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다. 독립군 활동도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를 차지했고 중국과 전쟁을 벌여 잇달아 승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독립운동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많아졌다. 심지어 일본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민족의 번영을 위해 더 바람직하고 말하는 사람도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봉길의 의거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사례였다. 


8. 법정에 선 반민족 행위자들의 최후 진술

최남선- 가마득하던 조국의 광복이 뜻밖에 얼른 실현되어 이제 민족 정기의 호령이 굉굉히 이 강산을 뒤흔드니.. 오직 공손히 법의 처단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채찍을 감수함으로써 조그만치라도 국민대중 앞에 참회의 표시를 삼는 것 외엔 다른 것이 없다.

최린- 변변치 못한 최린이지만 기미년 3.1운동 당시 일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자라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게 하였으니 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광수- 우리 국민은 문맹자도 많고 경제 자립도 어려워 일본과 싸워 이길 힘이 없습니다. ...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하였소, 내가 걸은 길이 정경대로는 아니오마는 그른 길을 걸어 민족을 위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오.


9. 대한민국의 반민족 행위자 처벌은 프랑스의 경우과 비교된다. 프랑스는 3년 정도 나치 치하에 있었지만 해방 이후 사법 기관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15만 8천여명이었다, 재찬을 거쳐 처형된 사람과 즉결 처분된 사람을 합하면 1만여 명에 이른다. 


10. 장기려박사 부부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이 부부는 재혼하지 않은 채 서로를 마음속에서나마 옆에 두고 50여년을 헤어져 살았다. 


"그립고 보고 싶은 당신께 기도 속에서 언제나 당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마음 속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응답해 주셨고 저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잘 자란 우리 아이들 몸은 헤어져 있었지만 저 혼자 키운 것이 아닙니다."


"택용 엄마, 어느덧 40년이 흘렀소, 6.25참화로 가족과 생이별한 이가 어찌 나뿐이오만, 해마다 6월이 되면 뭉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미는 이산의 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도로 눈물을 삭이곤 하오.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평향을 떠날 때 둘째 가용이만 데리고 월남한 것이 지금 내 가슴에 못이 되었오.,'


11. 이승만으 ㅣ독재가 이어지면서 민중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독재 정치에 대한 불만은 높아만 갔다. 1960년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자 85세의 이승만이 다시 후보로 나왔다. 이 해에 행해진 선거는 이승만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일부지역에서 자유당 표가 전체 유권자 수보다 많이 나오자 당황한 선거 관리 위원회가 이승만, 이기붕의 득표율을 낮추어 발효했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정권이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사건이었다. 


- 4.19 혁명: 부패한 독재 정권을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린 거대한 움직임 : 이승만은 미국으로 망명


12. 1961년 5.16쿠테타 제3공화국- 박정희/ 전태일: 1970년대 전후 경제 성장이 노동자와 농민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으나 그들의 삶까지 함께 나아진 것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13.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독재 정권에 의한 정치 억압과 인권 탄압 특혜와 비리로 점철된 정경 유착, 군사 문화의 범람, 가혹한 노동 착취 등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14. 김재규-"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 나의 죽음 즉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동시에 자유 민주주의가 절대 필요하고 자유 민주주의는 절대 회복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아주 확실히 깨닫게 되고 또 그것을 확실히 자기 몸에다가 목에 자기 가슴에다가 못 박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번에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민주주의의 나무의 거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또 보람으로 생각하고 매우 즐겁습니다. 나의 심정을 바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바로 나의 뜻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15. 1979년 1212 군사 반란 전두환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 권력을 연장하려는 군부에 대한 민주 세력의 저항


16. 전두환 정권은 민주 세력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북한의 남침 위협을 구실로 민주화 운동을 탄합했다. 민주 인사들에 대한 체포와 고문 투옥이 거듭되었다. 원인을 밝히지 못한 의문의 죽음도 꼬리를 이었다. 


17. 1987년 1월 박종철 군 고문 사망 - 정보기관은 단순사망으로 감추려 했으나 관련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고문에 의한 사망이란 사실과 권력이 이를 조작하고 감추려했다는 점이 밝혀짐 이에 분노한 국민은 정권의 퇴진을 요구 - 6월 민주화 항쟁


18. 1992년 김영삼 문민 정부 - 군부 통치와 단절을 선언 


19. 1997년 김대중 / 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


20.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대한민국은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늘 자신과 주변과 사회를 돌아보고 사회에 참여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힘있는 자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과도한 개발로 인한 환경 파과외 약자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시정하려는 시민 단체의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미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참여에 의해 완성된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함께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해 토론하며 함께 참여할 때 미래는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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