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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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의 선입관을 깨는 이야기이다. 가출은 부모와 가정의 울타리에서 탈출하는 것이고, 지독한 고생과 함께 자기 파괴에 이르기 십상인 반항 행위이다. 그런데 클로디아는 가출을 결심하고도 품위 있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 결과는 거리를 무작정 헤매는 것이 아닌 거대 미술관으로의 치밀하게 계획한 잠입이다. 그리고 16세기 유물인 호화 침대를 잠자리로 택한다.

클로디아가 왜 가출을 결행하는지, 가출 행위가 왜 조각상의 진위 탐구로 전환되는지, 작품 속에 나름의 설명이 나오지만, 그 설명의 설득력은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작품 말미에서 언급되는 부모의 말 못할 마음고생과 클로디아가 조각상의 스케치를 품에 안고 우는 모습은 때늦은 부연설명이거나 지나친 정서적 비약으로 비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매력이 크다. 단지 이야기 전체의 화자와 주인공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는지 의문을 품고 따라가게 하는 구조 덕분만은 아니다. 그러한 이야기 구조도 신선하긴 하지만, 그 이야기의 화자가 풍기는 우아한 귀족미가 바로 보편적인 매력의 근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결이 미술관의 르네상스 미술을 통해 이어지기 때문에, 우아하고 고상한 세계가 풍기는 매력은 시종 작품 전체에서 흘러나온다. 따지고 보면 영미의 많은 아동문학 고전들이 그 매력 요소를 활용했다. ‘소공녀’, ‘소공자’, ‘키다리 아저씨’, ‘비밀의 화원’, 그리고 (작가는 일본인이지만) 만화 캔디. 클로디아가 유혹을 참지 못하고 검은 대리석 욕조의 물을 틀고 마는 화려한 욕실 장면은 그 우아한 매력의 감각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비밀의 힘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즐거움을 준다. 비밀의 내용보다 비밀을 가진 그 자체가 타인 앞에서 나의 자긍심을 세워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클로디아의 가출이 내적 성장으로 승화되게 하는 힘으로 그려지지만, 실은 작품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카드게임에 그 의미가 이미 담겨 있다. 나의 패를 보여주지 않고 상대방의 호기심을 증폭시켜서 결국은 무릎을 꿇고 말게 만드는 것. 어떻게 하든 내 궁금증의 노출을 상대방의 것보다 지연시키면서 참는 것. 그것이 게임에서 이기는 비결이고,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것을 지키면서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마음을 샀고,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조각상의 비밀을 푸는 클로디아의 감격을 배가시켰다.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한 아이가 고상한 비밀을 가지는 것이 곧 인간으로서 멋진 성장에 다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1962년 작가 코닉스버그는 동시에 출간한 데뷔작 두 편으로 영미권 아동문학의 최고 권위 상인 뉴베리 상 후보에 오르더니, 결국 두 작품이 모두 상을 받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두 작품의 원 제목이 아동문학 작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매우 특이해서 또한 재미있다. 매우 특이하지만, 모범적인 제목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글 번역본의 제목은 또 너무 평이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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