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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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김애란인가

"바깥은 여름"이라는 소설집 이름 때문일까? 여름에 김애란 작가의 글을 읽었던 기억 때문일까. 올여름도 김애란 작가의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와 함께한다.


김애란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오랜 친구와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카톡으로 나누며 키득키득하던 순간도 올해 여름 기억하고 싶은 장면으로 남았다.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시간이 거기 그냥 고이도록 놔둔 집주인의 자신감과 여유가 부러웠다. p53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숲속 작은 집 중에서

이 문장에서 공간을 '사람'으로 바꿔서도 생각해 봤다. 내가 겪고 있는 노화를 이 문장에 비춰본다.

사무실을 나서며 '대표님 그렇게 살지 마시라'용기 내 말했는데, 와중에도 자연스레 존칭을 붙이고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p59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숲속 작은 집 중에서

마치 내 모습 같아서 깔깔 웃는데 눈가에 눈물도 맺힌다.

때가 되면 늘 같은 것을 먹어, 같은 냄새가 나는 변을 봤다. 부부라는 취향 공동체, 경제 공동체가 맛과 지출, 건강에 합의한 '지향'의 찌꺼기를 밀어냈다. p62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숲속 작은 집 중에서

가족(나포함) 방귀 냄새를 맡을 때, 남편의 똥 냄새가 남아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똥을 쌀 때 이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화장실 물을 내릴 때 우리가 합의한 '지향'의 찌꺼기를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 방의 벽지를 바꿀 수 없을 땐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생각하며 많은 위안이 되니까. p78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숲속 작은 집 중에서

좋은 비유를 쓰고 싶게 만들어준 문장, 내 벽지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이야기한 초라한 모습이 드라마처럼 떠올랐다.

내 속의 중요한 무언가를 꺼내고 싶었지만 그것을 지금 내 옆의 사람과 결코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p136~137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좋은 이웃 중에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글이 주는 위로다.

기태가 진정 후회하는 건 그 순간 자신이 굳이 '진심'을 말했다는 거였다.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이물감 중에서

굳이 '진심'을 말하고 후회하는 순간의 이불킥을 해본 적이 있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가 있었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랄까. 음식이 혀에 닿은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랄까.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 음식의 원재료가 품은 바람의 기억, 햇빛의 감도와 함께 대장 속 섬모들이 꿈꾸듯 출렁일 때 그 평화와 소화의 시간이 졸아든 게 바로 '내장의 관상'이었다. p179

김애란 소설집<안녕이라 그랬어> 수록작 이물감 중에서

내장의 관상 ㅋㅋ 어떻게 ㅋㅋ 요즘 음식을 마구 차려 마구마구 먹을 때도 의식하게 되는 내용이다.

<안녕이라 그랬어> 을 읽으며 김애란 작가가 보여주는 돈, 계급, 유머가 곁들어진 장면이 대체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보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개성 있게 풀어내다니,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라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이 나에게도 이물감 없이 다가온다.

이 책의 서술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동점 중 하나는 그들이 "계급의 표지"(171쪽)에 특히 잘 반응하는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화자본'이나 '아비투스'같은 학술 개념 없이도 그와 관련 있는 사회학적 징후들을 포착하는 데 뛰어나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안녕이라 그랬어> 해설 <네 이웃을 네 돈과 같이> 중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 책의 해설 마지막 부분에 김애란 작가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썼는데 "나도요"라고 조그맣게 외치게 된다. 앞으로의 만나게 될 여름, 다른 계절에도 김애란 작가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

'표현론'의 미학자 R.G 콜링우드는 이젠 거의 잊힌 고전『예술의 원리들 The pricnciples of Art(1938)』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는 어떤 공동체도 자신의 마음을 전부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는 실패한 표현은 '추'가 아니라 '악'이라고 덧붙였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악의 진정한 근원인데, 좋은 예술은 공동체를 제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의식의 부패를 막는'약'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녕을 위해 김애란의 안녕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안녕이라 그랬어> 해설 <네 이웃을 네 돈과 같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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