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의 할머니 - 어머니란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 여성들의 이야기
이시문 지음 / 어른의시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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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여성사, 소개만 들었을 때도 어마어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더 어마 무시(?) 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나, 그 당시에는 이야기와 머릿속 인물이 매치가 되지 않아 흘려들었다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철이 들어가면서 할머니의 이야기가 재미있기 시작했고 흥미가 생겨났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이야기로만 끝나기엔 아쉬웠고, 기록의 형태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어 결심이 서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집필하면서 부족함을 느껴 아쉬워질 때면 할머니의 이야기를 카세트로 녹음해서 남기지 못한 것은 한이라고 했으나, 읽어본 내 입장에선 충분히 꽉꽉 채워 담아낸 것 같았다. 이 책엔 100년을 살아낸 한 집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개인적으로 개인사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더 흥미를 느꼈던 건 당시 있었던 역사적 발자취들이었다. 

할머니들의 나이가 호적과 다른 이유는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왜놈의 호적에는 못 올린다고 완강히 버틴 덕에 벌금을 내고 출생과 다른 출생신고를 해서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할아버지는 군무원으로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간수 역할을 했는데, 해방이 되고도 전범으로 체포되어 전범재판을 치르게 된 사연, 그리고 대한 미국으로 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간 사연들이 그 시절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행정체계가 어지러웠던 아빠의 어린 시절에는 국민학교 입학 통지서가 제대로 오지 않아 누구누구 내년 3월에 동네 어디 학교 입학하라고 알려주면 끝이었고, 그것도 주소화 이름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틀리는 데로 자신의 이름이 아닌데도 그 이름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고 했다. 

맨숀이라고 불리는 최신식 아파트를 살면서 남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렸던 시기, 지금으로 보면 굉장히 불편할법한데도 그 당시는 그게 최고였다는 것, 방에 콩댐질이나 니스 칠을 하는 이야기, 기침감기에 먹던 호두기름, 약국에서 손바닥만 한 흰 종이에 가루를 담아 접어주던 시절 이야기, 돈가스를 처음 먹어보고 싫어할 뻔한 이야기 등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0년간에 우리의 삶은 많은 것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힘든 시절이라고 듣기만 했지,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어냈다는 건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흔적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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