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이주현 지음 / IVP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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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딸 안 키웠어요. 다 하나님이 키우셨어요.” 비가 오는 상견례 날, “딸을 너무 잘 키우셨어요.” 라는 사돈 어른의 말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엄마는 같이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훨씬 많다. 내가 7살 무렵, 엄마는 힘겨운 살림과 아빠와의 계속된 불화로 집을 나가버렸고 나와 동생은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분명 엄마는 살아있고 종종 연락이 닿았지만 내 곁에는 없었다. 유치원 졸업식 날 내 사진을 찍어줄 엄마도, 소풍 가는 날 김밥을 싸줄 엄마도, 생일마다 미역국을 끊여주는 엄마도 내 곁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 없는 삶’에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교 2학년 때,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 그런 엄마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딸. 그 아픔을 가슴 속에 묻은 채 저자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 시간동안 저자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화책의 말미에 가서야 엄마를 자신의 아이에게 소개해준 것을 보면 아마도 엄마가 그리우면서도 동시에 미운,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거대한 슬픔이 저자의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다행히도 이십 대 초반에 가서야 엄마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없이 산 시간들이 보상받는 건 아니었다. 내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은 정말 어이없게도 엄마와의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 터져 버렸다. “이게 다 엄마가 나 버리고 떠나서 그런 거잖아.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 그 말로 인해 엄마와 나의 아픔은 방바닥에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마주보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라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처음 겪어보는 ‘엄마’라는 역할.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엄마’라는 역할. 그날 나와 동생을 버리고 떠났던 엄마는 분명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아가씨였다. 나는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넓고도 숭고한 사랑으로 꺼억꺼억 울고 있는 엄마를 꼭 껴안아주었다. 엄마의 기도로 내가 이렇게 잘 컸다고, 엄마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고.


 《엄마의 엄마》라는 책은 나와 같이 엄마가 그리우면서도 미웠던, 엄마가 너무 보고싶지만 곁에 없어 볼 수 없는 모든 딸들을 위한 책이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나는 내 아이에게 나의 엄마를 이렇게 소개해주고 싶다. “아이야, 엄마의 엄마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란다. 슬프고 아픈 날도 많았지만 멀리서도 엄마를 지켜줬어. 아이야. 나는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고, 나도 너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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