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포스터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1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철이 일찍 든 아이는 대체적으로 당돌하다'는 게 내 개인적인 고정관념이다. 그도 그럴것이 내 스스로의 어린시절을, 어릴때 쓴 일기장을 통해 돌이켜봤을 때, 철이 일찍 든 나는 지극히 당돌한 여자애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엘렌과 같은 열한살, 열 두살 무렵 나는,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나 휠체어없이는 꼼짝할 수 없는 처지의 불쌍한 아이로 특수학교를 다니다가 처음으로 일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일반 비장애아이들에게 동정을 비롯한 놀림, 비난을 받지 않으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 덕분에 일찍 철이 들었지만 당돌해져버린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런 내가 어릴때 썼던 일기장을 들춰보다보니, 이런 내용의 일기가 하나 있었다. 아마 수업시간 때 각도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때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 전체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나보다. "00(이름)같은 친구도 이렇게 열심히 잘 그리는데, 너희들은 뭐하고 있어? 제대로 좀 못 그려?!!" 이 말을 들은 어린시절의 나는, 담임선생님이 매일매일 확인하고 답글을 달아주며 검사를 하는 일기장에다가 선생님에게 따지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써놓았더랬다.

<나같은 친구는 어떤 친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나같은 애는 각도를 잘 못그리는 게 당연하다는 말일까? 궁금하다.> 이것이 담임선생님께 따지는 태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른이 되어 읽은 이 일기는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고, 그 일기 아래 달린 담임선생님의 답글, <00야, 선생님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란다. 상처가 되는 말이었나보다. 미안하구나.>하는 글귀를 보고 새삼 울컥했다.

어린 날, 그때의 나는 그런 스쳐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발끈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않았나 싶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그런 어린 여자애를 보며 담임선생님이 하셨을 생각들이 짐작이 되어서 그랬다.

이 책, <엘렌 포스터>를 읽고 난 후의 느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인에어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작가의 말대로 엘렌은 제인에어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고, 빨강머리 앤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는 당돌하고, 재치있으며, 진취적인 꼬마 여자애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탓도 있겠지만 병약한 엄마, 폭력적인 아빠, 이기적인 이모들, 엘렌을 사위와 동일시하는 외할머니(책 속에서 엘렌은 외할머니를 외할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끝까지 '엄마의 엄마'라고 지칭한다.)가 엘렌을 그렇게 만들어간다.

오죽 했으면 꼬마 여자애가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나오고, 불쌍한 아이들을 모아 돌봐키워주는 아주머니에게 직접 자신을 키워달라고 부탁을 하고, 자신의 성까지 '포스터'라는 성으로 바꿀 생각을 하겠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엘렌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으리라.

우리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이 사랑스럽고 당돌한 여자아이, 엘렌을 어서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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