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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공무원... 우리 친척들, 특히 아버지 쪽 친가의 식구들은 대부분이 공무원이시다. 우선 아버지는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고모는 고등학교 가정 선생님이셨다가 이젠 영어선생님이시고, 큰아버지는 고등학교 화학선생님이셨다가 지금은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중이시며, 둘째 고모부는 시청에서, 셋째 고모부는 군청에서, 사촌언니들 중 제일 큰언니와 셋째 언니가 각각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시다.
친척들 수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공무원인 우리 친가의 명절 풍경을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절간이 따로 없다. 특히 식사시간!! 누구 하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어 숟가락과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땡그랑땡그랑 울릴 뿐이다.
한날은 외가쪽 조카 꼬마녀석이 부모님이 모두 집을 비우게 되어 본의 아니게 우리 과묵한 친가에 놀러를 온적이 있었는데,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말썽을 피우며 낮잠이라고는 자는 걸 못 볼 정도로 정신사나운 녀석이, 우리 친가에 온지 약 2시간만에 혼자 심심함을 참지 못하여 안방에 들어가 깊은 숙면을 취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이런 우리 친가 식구들의 나른하고 무기력한 모습들이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 역시 공무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번역의 서툰 부분들 때문에 빨리빨리 머릿속에서 이야기들이 그려지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너무너무 지루하게 흘러가는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잠이 쏟아져서, 마치 추석`설날 명절에 우리 친가 식구들을 마주한 것처럼 나른하고 작가가 툭툭 던지는 유머에도 쉽게 공감할 수가 없어 매우 지루했다.
이 책의 지루한 이야기 속 주인공은 케이치라는 남자로, 코마타니 시청에서 9년째 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다. 아내 미치코와 아들 텟페이, 딸 카에데와 함께 단란하고도(?) 지극히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가장인 케이치는 9년이 넘도록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도 아들 텟페이가 '아빠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거야?' 하고 물으면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른다.
나도 한번은 시청, 군청, 면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친척들에게 하는 일이 어떻게 되냐고, 아무 악의없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우리 식구들 역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음이 터져나온 대목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나는 무슨 일을 한다! 하고 딱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공무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는 코믹함을 끌어내려고 한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일본문화와 우리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유머코드의 다름 때문인지, 번역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탓인지, 잘 이해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어디,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지 어정쩡한 기분이 들게 하는 묘한 책이다.
'회전목마'라는 낭만적인 책제목과, 동화를 연상케하는 예쁜 책표지와는 쉽게 일치되지 않는 책내용의 언밸런스 때문에 실망감이 꽤나 크게 다가왔다. 책의 내용과 어울리는, 해학적 분위기의 책제목과 표지였다면 이렇게까지 큰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았을테고, 별 하나의 평점보다는 좀더 많은 점수를 줬을지 모르겠다 싶은 안타까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