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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친구 중에 옛날이야기, 즉 설화와 민담을 워낙에 좋아해서 노트 몇 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수집을 하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 컴퓨터 보급률이 낮았던 시절부터 시작된거라 직접 손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받아 적어가며 모으던 친구였다. 이 친구는 지금도 그 전공(?)을 살려 사회학과 국문학을 이중전공하며 대학원 공부까지 하며 그 수집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보니 적어도 그 친구를 아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를테면 나의 출신학교에서만큼은 그 친구의 존재 자체가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아는 학교 선생님들도 우리가 졸업을 한 이후에도 계속 후배들을 가르치며 이 친구의 이야기를 마치 전설을 이야기해 주듯 후배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이 친구는 전설수집가인 동시에 자기 자신이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기담수집가"역시 이 친구의 지금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보며 나의 눈길을 끌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기묘한 가면 하나가, 흡사 면사포와 같은 긴 머리칼을 흩뜨리고 있는 모습으로, 책을 펼쳤을때 어떤 기묘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책 속의 기담수집가는 바로 '에비스 하지메'라는 사람으로 '히사카'라는 조수와 함께 바에서 기거(?)하며 기담을 수집하고 있다. 기담 수집의 방법은 신문광고를 통해서였는데, 에비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자신이 겪은 기담을 이야기하면 그걸 듣고 그것이 진짜 기묘한 기담인지 심사하여 통과가 된다면 섭섭지 않을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을 신문에 광고를 한 것이다. 이 광고를 보고 에비스를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의 기담이 챕터별로 각각 펼쳐지고, 조수인 히사카가 예리한 판단으로 기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에비스의 결정을 돕는 형식으로 이 책은 진행이 된다.
모두 일곱가지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는 "기담 수집가"는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기담 혹은 사건들로 알차게 채워간다. 자기 그림자에 찔린 남자, 골동품 거울 속에 비친 소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예언을 할 수 있으며 초능력을 가진 마술사와 사랑에 빠져 목숨을 구한 여자, 물빛망토의 괴물에게 잡힐뻔 했던 남자, 겨울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대저택의 주인남자와의 사랑을 놓치고 평범한 주부가 된 여자,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 한 아이와의 만남으로 잊을 수 없는 하룻밤을 지낸 꼬마, 마지막으로 작가 지망생이자 자유기고가로 에비스와 히사카의 존재를 소문으로 듣고 추적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져버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기묘하고 신기한 기담같이 보이지만, 히사카의 추리력으로 결국 알고 보면 각각의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로 밝혀지고 만다. 이에 매번 실망을 하고 마는 에비스 하지메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시작-전개-끝의 구성이 일정하게, 다소 지루할 정도로 반복이 되고 있어 책의 마지막에 반전을 위한 무슨 커다란 복선이 아닐까 예상을 해보았는데, 그저 시의 운율과 같은 형식으로 반복한 것이라 조금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고, 마지막 에피소드 역시 앞의 이야기들을 총정리하는 식으로 반복하고 있어 책의 지면을 너무 막 쓴게 아닌가 하는 섭섭함이 없지 않았다.
스스로가 전설이 되어버린 나의 친구 전설수집가와 마찬가지로 에비스 하지메와 히사카 역시 그들 스스로가 기담이 되어버린다는 결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터라, 좀 더 색다른 결말을 원했던 나로서는 뭔가 아쉬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잘 짜여진 구성이 돋보이고,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도 알고보면 인간의 소행으로 빚어진 사건들이 아닐까 의심해보게 만드는 이 책은 분명 여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여름 소설이라 하겠다.